(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딸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마을잔치에 기자회견을 할 것이냐고 말하더라고요.”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 등 세계의 비극을 이유로 수상 기자회견과 마을 잔치를 마다했다고 한다.
소설가 한승원(85)은 11일 오전 전남 장흥군 안양면 율산마을 집필실 ‘해산토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와 이같이 말했다. 한 작가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54) 작가의 부친이다.
한 작가는 이날 딸 대신 기자들 앞에 나와 딸의 뜻을 전했다. 그는 전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된 10일 저녁 딸과 통화하며 출판사 한 곳을 택해 함께 기자회견을 하라고 조언했다. 한강은 그렇게 해보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밤사이 마음을 바꿨다.”
한 작가는 “딸(한강)이 ‘전쟁이 치열해져 날마다 죽음으로 (사람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느냐’면서 ‘기자회견을 안 하기로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강은 아버지가 열려던 수상 축하 마을잔치도 말렸다. 한 작가는 “여기 이 자리에서 잔치를 벌여서 동네 사람들한테 한 턱 내려고 그랬는데 (딸이) 그것도 하지 말라고 그런다"며 “‘제발 그 비극적인 일들(두 개의 전쟁)을 보고 즐기지 말라’고 그러고 ‘스웨덴 한림원에서 상을 준 것은 즐기라는 게 아니라 더 냉철해지라고 한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고민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이는 8년 전 맨부커상 수상 당시와는 180도 달라진 분위기다.
한 작가는 2016년 5월 22일, 딸 한강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을 때에는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 회관에서 주민 100여명을 초청해 수상 축하에 보답하는 마을 잔치를 베풀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마을에는 15개가 넘는 플래카드가 걸렸었다.
이날 한 작가는 마을 사람들의 축하에 감사의 뜻으로 ‘덕수궁 돌담길’ 등 노래 2곡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당시 한 작가는 수상 소식이 알려졌을 때 “딸과의 통화에서 동네 주민에게 한턱을 내겠다고 하자 딸이 기꺼이 비용을 대준다고 했다"고 전했었다.
이어 한 작가는 장흥문화원 협조를 받아 군민 200명을 초청해 군민회관에서 두 번째 축하잔치를 열기도 했다. 주인공 한강 작가는 불참했다.
한승원 작가는 1968년 등단해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소설집 ‘새터말 사람들’ 등을 펴낸 국내 대표 원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득량만이 내려다 보이는 집필 공간 ‘해산토굴’에서 30여년째 기거하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부녀 작가로도 유명한 한승원·한강은 ‘이상문학상’과 ‘김동리문학상’을 2대가 모두 수상하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