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4시쯤 경기 연천 비무장지대(DMZ) 경계 육군 28사단 일반전초(GOP) 철책에 외국인 유학생 13명이 줄지어 섰다. 6·25전쟁 참전 용사 후손들이 1박 2일 일정 전방 체험을 시작했다. 가시가 달린 철선이 돌돌 말려 있는 육중한 철조망을 이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언덕 사이 잡초만 무성한 흙길은 사람 한 명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비좁았다. 언덕 너머 북쪽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사단법인 ‘한국전쟁 참전국 기념사업회’와 28사단이 주관하는 이 프로그램엔 한국 유학 중인 프랑스·에티오피아·필리핀·콜롬비아·튀르키예 같은 전투병 지원국을 비롯, 인도 등 의료·물자 지원국 후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말로만 듣던 분단 현장인 DMZ를 방문하자 “할아버지들이 흘린 피가 실감이 난다”며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외대에서 국제학을 전공 중인 튀르키예계 독일인 일라이다 아심길(25)씨는 “할아버지가 해주신 6·25 이야기를 동화처럼 듣고 자랐는데, 현장에 와 보니 생생한 역사였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총알이 방탄모에 맞고 튕겨나간 아찔한 순간부터, 크리스마스 때 미군과 만나 치킨과 맥주를 먹던 이야기를 할아버지가 해주셨다”고 했다.
에티오피아인 규타 왁지라 지미추(35)씨는 한국에서 수년 전 대학을 마치고 인천의 한 공장에 일자리를 잡아 정착했다. 그는 “우리 아버지가 참여해 싸웠던 한국은 제2의 모국”이라며 “직접 군부대를 방문해보니 한국군의 철통같은 방비 태세가 굳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행사 관계자는 “최근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고 오물 풍선까지 투하하면서 국내 머무르는 외국인들의 불안은 물론, 한국에 가족을 보낸 전 세계 시민의 두려움도 커지고 있다”며 “참전국 후손들에게 한국을 위해 희생한 조상들의 피가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