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을날의 축제 풍경인가 싶지만, 이날 행사장에선 다량의 키오스크 기계가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했다. 잔디마당 외곽을 빙 둘러싸고 마련된 다양한 부대행사 부스에서 관객들이 키오스크로 뭔가를 결제하고 있었다. 아니, ‘기부’ 하고 있었다.
두더지게임부터 보글보글, 테트리스 같은 추억의 아케이드 게임이 마련된 레트로 오락실 풍의 ‘예나씨 게임랜드’에서 즉석사진관 ‘예나씨 네컷’ 앞에 친구와 줄을 선 20대 여성 전혜미씨를 만났다. “키오스크로 5000원을 기부하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코인 3개를 받았다”는 그는 “작년에도 왔는데 아티스트와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서 또 왔다. 요즘 바깥에서도 인생네컷을 많이 찍는데, 기부로 이어진다니 안 찍을 이유가 없다”며 셀프로 타투 스티커 붙이기에 분주했다.
후원자들을 위한 공간 ‘예나씨 라운지’에서는 키오스크로 2만~3만원을 소액 후원한 사람들이 아르코 지원으로 출판된 도서 등 선물을 챙기고 있었다. 안양에서 온 유민지씨는 입장권 손목 밴드의 QR코드를 찍고 1만원을 기부한 뒤 룰렛게임 이벤트에 참여해 5만원 상당의 블록 세트를 받았다. 그는 “평소에도 네이버 기부 펀딩을 통해 환경이나 동물을 위한 소액 기부를 자주 하는 편이라 기부라는 키워드에 꽂혀서 왔다”면서 “작년에도 왔었는데 이런 선물은 예상 못했다. 조카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스케일이 꽤 큰 어린이 놀이기구로 가득한 ‘예나씨 놀이터’에서 두 아이와 함께 놀고 있는 젊은 부부도 눈에 띄었다. 분당에서 온 시준·시연이 엄마는 “다른 페스티벌은 아이가 7~8살은 돼야 갈 수 있는데 4살과 10개월짜리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올 수 있고, 놀이공간까지 꾸며져 있어서 우리 같은 다자녀 가정에 좋은 기회가 됐다. 기부도 기부지만, 아이들과 놀면서 편하게 공연도 즐길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놀이가 기부가 되는 축제’ 아트 포레스트 페스티벌은 지난해 9월 아르코 창립 50주년과 문화예술 후원캠페인 예술나무운동 10주년을 맞아 처음 개최됐다. 지난해 9000명 관람객을 모아 하루 동안 예술나무 후원자 290명이 증가했고, 출연 가수 ‘리베란테’ 김지훈이 3000만원을 기부하자 팬클럽 150명의 릴레이 기부가 이어져 총 1억3600만원의 개인 후원금이 모였다. 페스티벌 수익금은 고립 은둔청년 대상 예술치유 프로그램과 자립준비 청년 음악활동 지원에 쓰였다.
올해는 더 많은 기부가 이뤄졌다. 관람객 7000여 명 중 예술나무 후원자 332명이 신규 발생했고, 후원금은 총 2억원이 모였다. 수익금과 모금 프로그램 ‘꿈밭펀딩’으로 모금된 기부금은 고 김민기의 학전 소극장을 계승한 아르코 꿈밭극장 운영에 사용될 예정이다.
☞예술나무운동=예술을 ‘우리가 함께 키워야 할 나무’로 형상화해 2012년 시작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 문화예술 후원 브랜드. 예술나무운동을 기점으로 문화예술 후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2014년 ‘문화예술후원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시행돼 문화예술 후원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약 4070억원의 기부금을 관리하며 예술인과 예술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2019~2022년 연평균 약 3000건, 1억3000만원 규모의 예술나무 기부금이 조성됐고, 페스티벌이 시작된 지난해에는 약 4600여건, 3억7000만원 규모의 기부금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