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예술축제 중 최근 K컬처의 부흥과 함께 공연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공연시장 규모는 사상 최초로 1조2000억원을 넘어섰고, 올 상반기 9168건, 5만7081회 공연의 판매액이 약 6288억원으로 전년 대비 24.9% 증가한 액수다. 축제의 계절 가을을 맞아 공연업계도 축제 브랜드로 뭉쳐 한층 더 붐업 중이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같은 역사와 전통의 브랜드부터 정부가 직접 나선 신생 브랜드 ‘대한민국은 공연중’까지, 10~11월은 ‘축제판 춘추전국’이다. 무릇 예술축제란 시대가 원하는 예술을 앞다퉈 보여주는 장이다. 과연 어떤 브랜드가 힘이 셀까.
지난 4일 찾은 대구는 가는 곳마다 시끌벅적했다. ‘판타지아 대구 페스타(판대페)’란 이름으로 4일부터 8개 축제가 동시에 열리고, 최근 문을 연 대구간송미술관과 교차 관람 이벤트까지 진행 중이다. 저 유명한 신윤복의 미인도와 김홍도의 풍속도, 훈민정음 해례본까지 공개한 개관전은 평일에도 대기 줄이 상당했다.
올해 축제는 ‘창의성’에 방점을 찍었다. 창작 오페라 ‘264, 그 한 개의 별’(18~19일)은 창작 오페라 연구회 사업을 통해 개발해 첫선을 보이는 전막 프로덕션으로, 대구 오페라의 정체성이 집약된 무대다. 지역 실존 인물인 민족시인 이육사의 생애를 담은 역사적 오페라 창작을 작곡가 김성재에게 맡겼고, 지휘자 이동신과 표현진 연출, 지역 대표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폐막 공연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국립오페라극장의 ‘푸치니 오페라 갈라’(11월 8일)는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루마니아 대표 성악가들이 대거 내한하는 해외 교류 사업. 오랜 전통의 축제 덕에 대구가 ‘오페라 도시’로 자리매김한 모양새다.
지난해 종가집 격인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을 산하에 둔 세종문화회관(사장 안호상)이 ‘대중성 확보’의 총대를 멨다. 전국의 단체를 불러 모아 타 장르 연주자들과 화려한 협연으로 국악관현악의 색다른 매력을 과시해 화제를 모았다. 올해는 지난 7월 창단한 평택시립을 비롯한 10개 단체가 더욱 풍성한 협연 퍼레이드를 펼친다. 젊은 지휘자 박상후가 이끄는 KBS 국악관현악단과 ‘팬텀싱어’ 박현수의 ‘Rhapsody of life’, 강원특별자치도립과 판소리 아이돌 김준수의 창극 ‘춘향’ ‘귀토’ 아리아 협연, 부산시립과 첼리스트 홍진호의 ‘푸른 달’(강상구 작곡), 국립국악원 창작악단과 메탈밴드 ‘백두산’ 김도균의 일렉트릭 기타 협주곡 등이다.
폐막 공연은 김성국 지휘자와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이 뉴에이지 국악 1세대 양방언의 피아노, 괴짜 소리꾼 이희문이 재해석한 민요 협연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지난해 무료로 시작했지만 올해는 전석 1만원의 유료 공연으로 전환한 것도 눈에 띈다. 아직은 낯선 국악관현악의 문턱은 낮추면서도 건강한 공연 문화 정착을 위한 행보다.
라인업도 전국구 못잖게 화려하다. 17일에는 첼로 거장 양성원이 2009년 결성한 ‘트리오 오원’이 멘델스존의 피아노 삼중주 등을 연주한다. 18일 메인 콘서트에서는 축제를 위해 특별히 조직된 M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차세대 지휘자 권민석이 장대한 말러 교향곡 1번에 도전한다. 젊은 비르투오소(명인 연주자)들의 무대도 있다. 11월 15일은 2021 부소니 콩쿠르 2위 김도현(피아노)과 2023 몬트리올 콩쿠르 2위 최송하(바이올린)가 첫 듀오 리사이틀로 뭉쳐 스메타나와 버르토크, 프랑크 소나타를 연주한다. 12월 10일은 내년도 쇼팽 콩쿠르 최고 기대주로 꼽히는 ‘일본의 임윤찬’ 카메이 마사야 리사이틀로, 쇼팽 에튀드·왈츠·발라드·마주르카·폴로네즈를 다양하게 연주한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예술감독 최석규)는 24년 역사를 자랑한다. 그간 세계 시장의 첨단 공연들을 앞장서 소개해 왔지만, 2022년부터 대안적 무대언어 실험의 장으로 변모했다. 피아노에 대한 사회학적 시선에서 출발한 김재훈의 실험극 ‘PNO’(1516일), 청각장애 안무가 미나미무라 치사토가 원폭 피해 생존자들의 서사를 전하는 ‘침묵 속에 기록된’(1718일), 난임 시술 경험을 형상화한 김보라와 국립현대무용단의 ‘내가 물에서 본 것’(17~19일) 등, 여성·장애·인종차별 같은 정치적 담론을 예술로 승화시킨 무대들이다.
1세대 거장들의 ‘무념무상’으로 막을 여는 축제의 꽃은 휴먼스탕스의 조재혁, 서울발레시어터의 최진수 등 차세대 안무가들의 치열한 경연이다. 휴먼스탕스의 무대(11월 8일)에는 ‘스테파’ 스타 김시원·박준우가 출연한다. 소극장 춤판시리즈 ‘열정춤판’과 경연 서울 댄스 랩 부문에도 기무간·김규년·김영웅 등 ‘스테파’ 스타들의 무대가 있다. 홍보대사 채시라가 명작무극장 ‘청풍명월’(11월 6일)의 독무를 맡아 무용수로 데뷔한다. 총상금 500만원이 걸린 시민참여 경연 ‘네마리 백조 페스티벌’도 축제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고전발레 ‘백조의 호수’ 4인무를 패러디한 퍼포먼스 영상을 대국민 온라인 투표로 심사하고, 1위는 11월 17일 폐막식 무대에 오른다.
■ 문체부가 하나로 묶은 K축제 브랜드는 ‘대한민국은 공연 중’
「 한국엔 아직 프랑스의 아비뇽, 영국의 에딘버러 페스티벌 같은 대표성을 띤 축제 브랜드가 없다. K축제 브랜드가 나올 때도 됐다. 전쟁터 같은 축제 열기에 정부가 기름을 부은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와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장호)가 올해 시작한 ‘대한민국은 공연중’(4일~11월 10일)은 유통과 홍보에 방점을 찍고 전국 방방곡곡의 수많은 공연들을 축제 브랜드로 묶어 해외에서도 주목 받게 한다는 취지다.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 부산문화회관 등 전국 주요 공연장을 무대 삼아 국립 예술단체와 유명 예술가들의 화려한 라인업에 지역 예술단체들을 합류시켜 140여 편의 공연을 함께 띄우는 형태다.
국립극장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박재홍(22일), 국립발레단 ‘해설이 있는 전막발레 돈키호테’(23일),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창극단,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합동 공연(25일)등 국립예술단체들의 축제로 꾸미고, 명동예술극장은 안애순컴퍼니의 ‘척’(2223일)을 비롯한 춤판을 벌인다. 청와대 헬기장(1920일)과 서계동 국립극단 터(12·19일)에서 야외 공연도 있다. 공연장별 패키지 입장권 할인, KTX 승차권을 결합한 할인 상품 등을 제공한다.
‘아시아 최대 마켓형 공연예술 축제’를 목표로 야심차게 출발한 만큼 예술단체와 국내외 공연장 관계자들을 연결시켜 주는 비즈니스 미팅도 마련됐다. 유인촌 장관은 “예술단체들이 힘들어 하는 홍보마케팅을 공조직에서 돕기 위해 올해 시범 형식으로 시작한다. 내년부터는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 공연예술계의 유통과 해외 진출을 위한 큰 장이 서도록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