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예약이 가장 많은 숨 가쁜 아침 시간이 지나 한숨 돌리고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넘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다음 ○○○씨~ 들어가세요”. 갓 성인이 된 것으로 보이는 앳된 청년이 미소를 머금고 들어왔다. 청년보다 소년에 더 가까운 그에게, 음주력과 흡연력을 물어보기 민망한 마음이었는데, 건강검진에서 흔히 물어보는 질병력, 건강행동, 가족력 등의 질문에 대해 서글서글한 음성으로 명랑하게 대답했다. 그래, 이 나이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다.
상담을 마무리 하며 “요즘 마음은 좀 어떠세요?”라고 가볍게 던진 질문에 이 청년의 밝은 얼굴이 점점 붉게 물들었다. ‘마음이 많이 힘들다, 취업 친구 가족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아! 그의 우울증 설문지를 급히 살펴보니 위험군에 가까운 점수였다. 아픈 마음을 호소하던 그는 바깥에 나가기 힘들어 집에만 있다고 얘기하면서부터 눈시울이 젖었다. 가족이 있지만 취업 준비를 위해 혼자 살고 있는데, 식사가 부실하고 잠도 불규칙해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황이었다. 취업공부도 인터넷으로 하고, 밥도 배달음식으로, 친구도 없고 밤낮이 바뀐 상태였다. 취업에 실패를 거듭하니 가족 보기 민망해 더 고립되고 있었다. 우선, 하루 한번 산책하기를 권했다. 커피를 집에서 마시지 말고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사먹으라고. 그걸 위해서라도 하루 한 번은 외출을 하게 하고 정기적인 정신과 상담을 권장했다.
우울증은 이제 감기만큼이나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질환이 되었다. 2023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일반건강진단에서 정신건강검진을 약 835만 명이 수검했는데, 이 중 약 43만 명(5%)이 중간 정도 이상의 우울증이었고, 이 중 41만 명은 자살 또는 자해 생각을 해 보았고, 3만 명은 심한 우울증이었다.
필자는 10명에 한 명은 우울증 설문에서 중간 정도 이상의 우울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의 방문을 맞이한다. 건강검진에서 만나는 이런 분들은 “요즘 마음이 좀 어떠세요?”라는 질문 하나에 눈물을 쏟아버린다. 마음이 오랫동안 힘들었지만 이런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혼자서 극복하기 힘든 상황인데, 정작 본인은 이런 증상 정도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야 하나, 망설인다. 이런 분들에게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 주기 통보, 우울증 설문의 작성은 하나의 건강한 계기가 되어준다. 아프기 전에 신체를 검진하는 건강검진만큼이나 마음이 아프기 전에도 미리 검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건강검진제도의 큰 장점이다.그런데 검진에서 발견된 이러한 환자에 대해 검진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담, 전문의 진료 안내 정도이다. 좀 더 다양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이 있어서 안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직장에서 업무와 관련된 정신질환도 점점 공론화 되어 산재를 통한 보상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감정노동, 직장 내 괴롭힘, 과로나 직무스트레스와 관련된 정신질병은 이제 드러내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며, 산재보상으로 연결되는 사례도 늘어나 2018년 대비 2022년에 5배가 되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직무스트레스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교육공무원은 일반직 공무원과 비교하면 우울증과 급성스트레스 등의 질환이 2배 이상이라고 조사되었다.
필자도 건강검진에서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있는 간호사, 끔찍한 사고 현장을 자주 만나는 소방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증후군, 과로로 인한 수면장애 끝에 나타난 우울증 등으로 전문의 진료를 받는 자영업자를 가끔 만나게 된다. 산재보상을 받은 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아주 심한 증상이 생긴 후에야 자비로 진료받고 있었다. 국민이 정신건강을 정기적으로 검진받을 기회가 생기고, 산재보상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이다. 더불어, 예방대책과 환자에 대한 진료를 연계할 방안을 직업 생활 연령 등 다양한 국민의 상황에 맞게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