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주말 내내 대형 서점에 한강의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는 등 ‘한강 열풍’이 불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일 그의 작품 세계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표현하며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흥행 성공과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 등 K팝 인기에 이어 한국문학이 세계 중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마련됐다.
한 작가는 고통받은 존재들의 아픔을 예민한 감수성으로 섬세하게 그린 작품을 선보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2014년 장편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 사건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2021년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가 대표적이다. 2007년 연작 소설집 ‘채식주의자’는 한강이란 이름이 국내 대중은 물론 세계 문학계에 널리 알린 시발점이 됐다. 육식을 거부하며 가족들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주인공 영혜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다. 그는 ‘채식주의자’로 우리나라 작가 최초로 영국 부커상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 소식으로 일반 서점가는 물론 교보문고와 예스 24 등 온라인서점에는 한강 작가 책 주문이 폭주해 사이트가 마비됐다. 자기계발서나 실용서적이 차지하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랜만에 문학작품이 대거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MZ세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한강 책 인증 챌린지’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영상에 몰입한 우리 사회가 독서와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독서로 길러지는 인문학적 교양과 삶의 지혜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또한 종합적인 사고능력과 창의력을 향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많은 이가 다양한 작품을 읽어 보고 인문교양서도 폭넓게 접해보는 등 독서 열기가 퍼지길 바란다.
무엇보다 이번 수상은 변방의 언어인 한국어 문학이 세계 문학에서 당당히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그동안 한국 문학은 언어적 한계가 굴레처럼 여겨졌다.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언어의 결을 살려내는 번역이 그만큼 중요하다. 한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프랑스 메디치상,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받은 ‘작별하지 않는다’ 등도 번역본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이처럼 노벨상 수상이 일회성 낭보에 그치지 않으려면 훌륭한 번역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출판지원사업’ 예산을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18억 원대에 머무르다 올해 20억 원으로 소폭 증가한 데 그쳤다. 정부가 우리 문학의 번역 지원을 확대해 국내 작가 작품을 적극 알리는 데 힘써야 마땅하다. 작가의 창작 의욕을 높이도록 다양한 제도적 지원도 뒤따라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