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적 금리 인하’.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낮출 때 나온 표현입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금융안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면에서 매파적 금리 인하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는 3년 2개월 만이었습니다. 용산 대통령실을 비롯해 정치권에서는 큰 폭의 금리 인하를 기대했습니다. 장기 고금리 체제로 영세 자영업자와 가계가 금리 부담 압박에 시달려왔습니다. 소비를 자극하려면 금리를 낮춰주는 게 마땅하지요. 이런 이유만 본다면 큰 폭의 금리 인하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한은은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빅컷(0.5%포인트 인하) 대신 찔끔 인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융긴축을 화끈하게 풀어주는 대신 매파적 금리 인하에 그쳤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긴축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대한민국의 부채 때문입니다.
영세 자영업 및 중소기업은 한계 상황에 몰려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계속 빚을 얻어 연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리가 내려가면 이런 상황이 더 악화해 경제 생태계를 황폐하게 합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빅컷은 부동산시장에 거품을 더 키울 우려가 있습니다. 정부는 뒤늦게 대출 규제를 조이고 있으나 주택담보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최고 5.5%까지 올렸을 때 한은은 3.5%에서 금리 인상을 멈췄습니다. 그랬던 만큼 한은은 피벗(금리방향 전환)의 여지가 크지 않습니다. 매파적 금리 인하가 예고된 만큼 경제 주체들도 금리 인하에 과도한 기대를 갖지 않는 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동호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