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마감일 저녁, 반가운 속보에 편집국이 술렁였다. ‘노벨문학상에 소설가 한강.’ 여러 사람이 흥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마치 가까운 지인이라도 되는 양 혼자 박수를 치는 기자도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 타임라인에서도 여러 가지 방식의 축하 글들이 오갔다. 누군가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 한강 작가의 대표작들에 대한 감상문을 새삼 적어냈고, 누군가는 과거 노벨문학상 물망에 올랐던 다른 한국 작가와 한강의 비교분석론을 펼치며 그녀의 탁월함을 논증했다. 어떤 이는 한국 소득세법 시행령에 노벨상 상금의 비과세가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찾아 알리고, 또 다른 이는 한강 작가 단행본을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린 온라인 서점 접속 대기 화면 캡처를 공유하며 기쁨과 뿌듯함을 나눴다. 그렇다. 우리는 ‘축하의 민족’이었다.
‘축 결혼.’ 아끼는 지인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갈 때마다 흰 봉투에 이 세 글자를 정성스레 눌러쓰며 궁리한다. ‘어떻게 해야 이 축하의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뭇 하객들 사이에서 내 축하의 마음이 혹여 묻혀버릴까 조바심이 나서 축의금 봉투를 좀 두둑하게 채워보기도 하고, 방명록에 방정맞은 메시지도 남겨본다. 신랑신부 입장 때 힘차게 물개 박수도 쳐보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객 사진 촬영 때까지 뷔페식당으로 내려가지 않고 꾹 참았다가 얼굴 ‘인증’도 남긴다.
축하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좋은 일이니까. 타인 둘이 서로를 믿고 인생을 섞어 같은 길을 걸어가겠다는 결심은 꽤 용감하고 흥미진진한 선택임이 분명하니까.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운명 공동체’로서 앞날을 공언하고 인정받는 행위를 통해서 그 맞잡은 손이 조금 더 끈끈해질 수도 있으니까.
여기 열한 쌍 부부의 결혼 이야기가 있다. 세상의 숱한 커플과 별다를 바 없이 만나고 사랑하고 함께 미래를 꿈꿔 결혼을 결심했지만, 이들의 혼인신고서는 모두 구청에서 반려당했다. 동성 부부이기 때문이다. 동성혼 법제화를 위한 ‘혼인평등소송’에 참여한 이들 열한 쌍 부부는 지난 2주간 〈시사IN〉 취재팀에 기꺼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고 사는 집 문을 열어줬다. 나경희·신선영 기자가 취재수첩에 받아 적고 카메라로 찍어온 그들의 결혼 이야기와 사는 모습은 눈부시게 찬란하고도 한편으론 지극히 평범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결혼을 축하했다. 부모, 직장 상사와 동료, 구청 직원, 프러포즈 반지 매장 점원, 결혼식에 초대된 수많은 하객이 이미 알고 있었다. 결혼은 원하는 커플 모두의 것이란 걸. 사랑‘들’이 이길 것이며, 동성혼 법제화는 “결국 될 일”이라는 걸. 나도 숟가락 얹어 뒤늦게나마 세상의 모든 동성 부부에게 인사를 전한다. “결혼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