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기고 ‘변호사들의 교육 이야기’ ⑧
박은선 | 변호사
“너희는 대체 왜 학교에 다니니?” 고등학교 2학년 수학 시간이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수업하다 말고 이 말을 남긴 채 나가버리셨다.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신다고 했다. 이러려고 교사가 된 게 아니라고 하셨다. 수업하는 코앞에서 우리가 문제집을 버젓이 펴놓고 푸는 모습에 화가 나신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선생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화가 났다. 입학 전 방학숙제로 선행학습을 시키는 학교에서, 선생님은 ‘정석대로’ 교과서 내용을 차근히 설명하고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들을 가르치면서 어떻게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길 바라시는 거지? 우리에겐 선생님이 사범대에서 배운 ‘정석적인’ 수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수학의 정석’ 속 문제 풀이가 더 중요한데? 좋아. 우리가 대학만 잘 가려는 이기적인 애들이라고 해. 하지만 세상이 우리를 이렇게 입시에, 경쟁에 내모는데, 그게 어떻게 우리 탓이야? 속으로 원망의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변호사가 되기 전 고등학교 사회과 교사로 근무한 시기가 있었다. 대학 시절 탓인지 나는 학생들과 토론하며 함께 성장하는 사회과 교사가 되고 싶었다. 초임 시절엔 꿈을 이루는 듯했다. 토론수업, 연극수업 등 다양한 수업을 했고 햇빛이 좋으면 교과서를 버리고 야외수업도 했다. 그러나 곧 학생들이, 학부모들이 진정으로 나에게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됐다. 사범대에서 수행평가는 절대평가가 적합하다고 배웠기에 반 전체에 만점을 줬다가 장학사에게 불려가 혼이 났고, 기말고사 땐 1등급이 안 나오게 됐다며 “우리 애 명문대 못 가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는 학부모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줄을 세워야 했다. 촘촘하게 줄 세울 수 있도록 출제해야 했다. 촘촘한 줄 세우기용 출제는 수능에 최대한 부합해야 했다. 입시가 코 앞인 아이들을 놓고 참교육 놀이를 할 수는 없었다.
몇 해 지나지 않아 나의 수업은 완전히 변했다. 교과서 대신 수능 기출 문제집으로 진도를 나갔다. 퇴근 후 인터넷강의를 듣고 일타 강사의 강의를 돈 내고 따로 들을 필요 없는 ‘효과적인 학교 수업’을 했다. 학생들은 호응했고 방과후학교 수강신청에 학생들이 몰려 월급보다 그 강의료가 더 많은 때도 있었다.
그때, 잊고 있던 그 젊은 수학 선생님이 떠올랐다. 비로소 그가 이해됐다. ‘학교의 목적’은 무엇일까? 학교의 목적은 학교에서의 행복과 성장 그 자체여야 하지 않을까? 선생님은 학교의 본질과 교육 본연의 목적에서 멀어진 교실을 참지 못하고 교단을 떠났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그와 전혀 다른 교사로 변화했던 나는 교사 시절 행복하지 않았다. 또 나로부터 ‘수험 스킬’만 전달받았던, “친구가 대학 떨어지면 눈물 나지만, 친구가 합격하고 내가 떨어지면 피눈물 나는 거야” 이런 말들을 했던, 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기본법 제2조는 학교 내지 교육의 목적을 일차적으로 ‘인격 도야’로 규정한다. 명문대의 좁은 문을 앞에 둔 채 장시간 문제풀이형 학습노동에 매달리게 하는 것은 아동학대고 인권침해다. 우리 아동, 청소년의 지금 당장 행복할 권리를 철저히 파괴하는 이 상황에서 ‘인격 도야’가 가능할 리 없다.
학교의 목적. 교육의 목적. 과연, 이대로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