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연 |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
2016년 무렵, 나는 팬클럽 아미의 일원으로서 하루의 절반 이상을 방탄소년단(BTS)과 함께했다. 어린 나에게 방탄소년단의 솔직한 소망과 두려움, 삶의 기쁨, 현실에 대한 풍자가 담긴 노래는 세상을 한 겹씩 들여다보게 해 주는 창과 같았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다 알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중학생이 되고 사회문제에 조금 더 눈을 뜨게 된 후, 지구 기온 1.5도 상승까지 고작 7년 남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당장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청소년 기후행동 단체에 들어가 석탄발전소 추가 건설을 막는 캠페인 등에 참여했다. 그러한 행동은 기후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조직한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com)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이처럼 세상에 목소리를 내게 된 배경에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 방탄소년단의 영향이 작지 않다.
그런데 나는 지금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 케이팝의 열렬한 팬, 그리고 기후위기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청년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충돌하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현실은 케이팝 산업의 왜곡된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케이팝 그룹이 인기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앨범이 많이 팔려야 한다. 앨범 판매량은 그대로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의 이익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획사들은 갖가지 상술을 동원한다. 이들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실물 앨범에 랜덤 포토카드를 끼워 팔거나 음반을 팬 사인회 응모권으로 이용하는가 하면, 사진 컨셉만 다른 동일한 앨범을 발매해 한 명의 팬이 여러 장의 앨범을 사도록 부추기고 있다. 그러다보니 모두가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에 플라스틱 앨범은 전년대비 50% 증가한 1억1578만장이 지난해 판매되었다. 시디(CD) 한장 제작할 때 배출하는 탄소량이 500g 정도라니 사용하지도 않을 시디 제작으로 5만7890톤의 탄소를 배출한 셈이다. 포장, 유통, 폐기 과정에 배출하는 탄소를 생각하면 그 양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가 사랑한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도 이러한 ‘반기후적 마케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을 좋아했다. 그가 방탄소년단이라는 그룹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단지 인기를 좇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진심과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다. 2019년 방시혁 의장이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본인의 원동력은 분노”라고 밝혔을 때, 눈 앞에 닥친 위기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기성세대에 분노하던 나는 격하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의 여정에 무수한 부조리와 몰상식이 존재할 것이고, 이것들이 행복을 좇는 여러분의 노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본인처럼 분노하고 맞서 싸우기를 당부”한다던 그의 말은 내게 큰 울림을 줬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현실에 더욱 화가 난다. 팬 사인회를 한번 할 때마다 응모를 위해 구매한 많은 앨범이 버려지고, 포토카드만 챙긴 채 뜯지도 않고 버려지는 앨범이 쌓여가는 모습에 케이팝 팬으로서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 이는 단순한 악덕 마케팅을 넘어 케이팝을 사랑하는 팬들을 기후위기 심화의 공범으로 만드는 일이다.
내가 바라는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미래의 기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속가능한 지구에서 내가 좋아하는 케이팝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나는 계속 분노하고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방시혁 의장에게 되묻고 싶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과 불공정한 거래 관행에, 케이팝이란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이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것에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