ʺ성인 1년에 종이책 1.7권 읽는데ʺ....한강 노벨상, 독서 열기로도 이어질까

“한강 작가의 소설은 구매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예약을 걸어 놓았고요. 나온 김에 아이 참고서랑 제가 읽을 책 몇 권 샀습니다.” 14일 저녁 8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만난 40대 여성 김모씨는 “오늘쯤엔 책이 있을까 해서 와 봤다”며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서점 한쪽에 커다랗게 한강 작가의 사진과 함께 매대가 차려졌지만, 책은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옆쪽에 마련된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 책 전시 매대는 책을 들춰보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출판계는 역대급 호황을 맞았다. 대표작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비롯한 한강 작가의 책들은 지난 10일 수상 이후 14일 오후 2시까지 교보문고에서 31만부, 예스24에서 33만부, 알라딘에서 20만부가 나가 총 84만부가량 판매됐다. 온라인 서점 관계자는 “2016년 한강 작가의 부커상 수상 당시에도 책이 많이 팔렸지만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며 “서점 하루 매출이 2003년 도서정가제 시행 후 역대 최고를 찍고 있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와 관계가 있거나 언급한 다른 책들까지 무섭게 팔려나가는 추세다. 교보문고에서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작품 판매량은 노벨상 발표 후 3일간 110배 상승했다. 한강 작가의 인터뷰가 실린 문학잡지 ‘악스트(Axt)’ 2022년 1/2월호는 잡지 판매 1위에 올라섰다. 한강 작가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서 언급한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는 “『긴 호흡』은 2019년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 2만부가량 판매됐고 최근엔 찾는 이가 많지 않았다”면서 “주말 동안 편지 내용이 알려지면서 14일 아침에만 1000부 이상 주문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한국인 10명 중 6명,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3년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2022년 9월~2023년 8월) 성인 가운데 교과서와 참고서 등을 제외한 일반 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인 종합독서율은 43%로 1994년 조사 개시 이래 가장 낮았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의미다.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3.9권, 종이책으로 좁히면 1.7권에 불과했다. 독서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4.4%),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 책 이외의 매체를 이용해서’(23.4%) 등이 꼽혔다.

전반적인 책 소비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최근에는 반등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가구 서적 구입비는 지난해(2분기 8077원)와 비교하면 저점을 찍고 반등한 상황이다. 판매 흐름도 개선되고 있다. 서적·문구의 유통 동향 등을 볼 수 있는 소매판매액지수(불변지수, 2020년=100)는 2021~2022년 100 아래로 부진했다가 2023년 106.2로 상승했다. ‘한강 효과’가 반영되면 이런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나도 한강 읽는다…‘텍스트힙(Text Hip)’ 문화

‘한강 관련 작품만 팔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출판사들에 따르면 수상 소식 이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던 『트렌드 코리아 2025』나 정유정 작가의 소설 『영원한 천국』 등의 판매량도 줄어들지 않은 상황이다. 김기욱 예스24 도서사업1팀장은 “한강 작가뿐 아니라 톨스토이상을 수상한 김주혜 작가의 도서 등을 찾는 사람도 증가하는 등 한국 문학과 출판계 전반이 활기를 띨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미화 출판평론가는 “노벨상 수상이 사람들을 서점으로 유인하는 강력한 동인이 되어줬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면서도 “이런 흐름이 짧은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즐기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정책적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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