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속의 요정’ 20주년 김성녀 “1인32역 어떻게 했냐면···”

배우 1명이 연극 한 편을 홀로 책임지는 모노드라마는 배우의 꿈과 같다. 많은 연극배우가 자신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는 모노드라마를 열망한다.

배우 김성녀(74)는 마당놀이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뮤지컬, 창극, 연극 등 온갖 무대예술을 섭렵한 베테랑이다. 그가 자신의 대표작이 될 모노드라마를 만난 것은 50대 중반에 접어든 2005년이었다. 남편 손진책이 연출한 <벽 속의 요정>은 공연 첫해부터 올해의 예술상, 동아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팬데믹 시기였던 2020년, 2021년을 제외하고 매년 관객을 만났다. 지금까지 국내 34개 도시와 미국, 일본, 중국에서 공연했다.

20년을 이어온 <벽 속의 요정>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10월31일~11월10일 다시 상연한다. 배우 김성녀·연출 손진책이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들에게 작품에 관한 소회를 풀었다.

<벽 속의 요정>은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독재정권을 피해 벽 속에 숨어 살던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스페인 소설에 기반한다. 이를 일본의 후쿠다 요시유키가 연극 무대로 가져왔다. 한국에선 고 김민기가 연출하고 김혜자가 주연해 무대에 올리려 했으나, 제작 일정이 지연되면서 김성녀·손진책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일본 희곡은 원작에 충실하게 스페인을 배경으로 했지만, “외국 배경 작품이 영 와닿지 않는 체질”인 손진책은 당시 촉망받는 극작가 배삼식과 함께 이를 한국 배경으로 바꿨다. 후쿠다는 스페인 내전을 그대로 사용하기 원했으나, 손진책은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진행 중인 한국으로 바꾸겠다”고 고집을 피워 관철했다. 한국판을 본 후쿠다는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며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극단 미추 대표였던 손진책이 아내의 모노드라마를 직접 만들기 어색해하던 차에, PMC프러덕션의 송승환이 ‘여배우 시리즈’의 일환으로 이 작품을 올렸다. 2005년 6월 초연한 <벽 속의 요정>은 첫 회부터 기립박수를 불렀다. 모노드라마가 종종 무대에 오르긴 하지만, 배우 1명이 32명을 연기하는 연극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1950년대 말, 정치적 이유로 벽 속에 숨어 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소녀는 벽 속에 요정이 있다고 믿는다. 김성녀는 5세 아이, 사춘기 소녀, 아버지, 어머니, 경찰, 목사, 건달이 된다.

“남들은 어렵게 보는데, 전 그다지 어렵진 않았어요. 창극, 마당놀이 하면서 남자 역 많이 해본 게 도움이 됐어요. 제가 제갈공명, 홍길동, 이몽룡 역도 했거든요. 남자 목소리에 적합한 발성법을 알고 있었어요. 다만 변신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가느냐가 문제였죠.”(김성녀)

“내가 연출한 작품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보면서 수정·보완합니다. 그런데 <벽 속의 요정>은 이상하게도 20년 사이 연출상의 변화가 거의 없어요. 이 작품은 2000석 대극장에서도, 100석 소극장에서도 관객을 빨아들입니다. 이데올로기의 비극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생명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찬가입니다. 보편적인 주제라 윤색하거나 첨삭할 일이 거의 없어요.”(손진책)

2시간10분 동안 32명의 인격을 연기하며, 12곡의 노래도 부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김성녀는 초연 53회를 “녹용, 산삼 별거 다 먹으면서” 버텨냈다. 당시에는 “활화산처럼 쏟아내고 자빠질 정도”였지만, 이제는 “힘 조절이 가능한 공연”을 한다. 단 지금까지 337회 중 같은 공연은 한 번도 없다고 자신했다. 김성녀는 “이제 높은 음이 젊었을 때처럼 나오진 않는다. 욕심부리지 말고 내 나이에 맞는 연기와 노래를 하자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공연에서 ‘75세 배우가 두 시간 동안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 이번에 잘되면 30년까지 해볼 것이고, 완성도 떨어지면 ‘배우의 무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녀는 32명 배역 중 가장 어려운 것을 뽑아달라는 질문에 “‘아이는 노인과 통한다’고, 다섯 살 소녀는 오히려 쉽다. 70 넘어가니 스무 살 처녀 역할이 너무 쑥스럽다. 요즘엔 6시 저녁 식사를 마지막으로 안 먹고 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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