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의 발라드 No.1 번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알 수 없는 깊은 우수와 마음 속 깊은 곳의 열정이 묻어나 그 누구라도 마음을 뺏겨 버릴 수 밖에 없는 이 곡을….
유명 영화 ‘피아니스트’에서도 이 음악은 명장면에서 활용되었다. 독일 나치시대 무자비한 칼날 아래 모두가 숨죽여 숨어 있던 그때에, 독일 장교로부터 숨어있던 유태인 피아니스트의 목숨줄을 살린 건 다름아닌 다 낡아 빠진 피아노에서 연주한 쇼팽의 발라드 No. 1번이었다.
이 곡을 작곡한 쇼팽은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쇼팽은 이곳 저곳을 이사하며 아픈 몸을 이끌고 차가운 동네주민들의 시선을 견디며 주옥 같은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이 발라드는 20대 초반에 작곡되었는데, 그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과 이별 등을 통해 화성감 넘치는 너무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곡이다.
결코 많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삶의 다양한 여정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쇼팽의 발라드를 들으면, 그의 녹녹치 않았던 삶의 흔적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같은 흔적은 쇼팽 스스로에게는 힘든 삶의 여정이었겠지만 음악가로서는 최고의 자양분이 된 듯 하다. 기침과 가슴통증이 점점 쇼팽의 몸을 사로잡고 유부녀였던 상드와의 사랑으로 시시콜콜한 타인들의 넘치는 관심을 받으며 피아노의 시인으로 굵은 인생의 선을 긋는 이러한 흔적들은 쇼팽을 섬세하고 깊이있는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며 낭만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중 한 명으로 위상을 날릴 수 있게 하였다.
우리도 살면서 다양한 삶의 흔적들을 남긴다. 이러한 흔적들은 언젠가 새로운 인연으로, 또는 새로운 기회로, 또는 성장을 위한 밑걸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치 해변가의 모래가 바닷물에 휩쓸려 시시각각 자국을 남기고 사라지듯 우리 삶의 흔적들도 그러하다. 이러한 흔적들은 때로는 뒤늦은 후회로 남기도 하고 때로는 탁월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 흔적이 너무 진하여 오랫동안 삶의 뒤를 그 흔적이 따라오기도 하고, 무엇보다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 삶의 모든 흔적들이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니 하루하루의 삶의 무게는 얼마나 무겁고 중할까 싶다. 이러한 하루를 보내며 때로는 마음가득 그리움을,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망상과 상상으로 마음의 자유를 찾아 떠나보는 것도 꽤 괜찮은 요즘의 하늘이다.
늘 더불어 살기에 굴하지 않고 늘 보담듬고 함께하며 무엇보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의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내 삶의 흔적들은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또 새롭게 흔적을 만들 것인지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며 쇼팽의 발라드와 함께 아름다운 10월 맞아보는 건 어떨까. 이번 가을은 쇼팽의 작품에 우리 함께 빠져보자. 가장 깊은 마음 속 외침을 들으러…. 이수정 남서울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