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빼고 달리는 나는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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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기자]

5월에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경포마라톤을 신청했었다. 어쩌다 10월에 경포마라톤이 있다는 걸 알았고, 달리기를 30주(6개월) 동안 해보겠다는 프로젝트의 아주 알맞은 대단원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달리기를 시작한 친구 A가 강릉에 살기도 했다.

게다가 30주는 6개월이 아니라 7개월이라는 것을 중간에 깨달았다(…). 달리기+글쓰기 프로젝트의 끝은 10월이 아니라 11월. 이래저래 경포마라톤은 애매한 고지가 되어 있었다. 친구들(A와 나중에 합류한 R)과 함께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기록도 단축하면 좋고.

마라톤대회 참가에 재미를 붙인 후, 오프라인 참가는 한 달에 한 번만 하기로 혼자 타협을 했다. 11월엔 5킬로미터 가족런을 신청했다. 세 아이들에게 슬슬 달리기를 소개해주어야지, 틈을 보다가 지난주 함께 달리기를 해보았다. 한 번은 막내와 한 바퀴, 다음날엔 세 아이들 모두와 한 바퀴.

아주 천천히, 걷는 것과 다름없는 속도로, 힘들면 걷기도 하면서, 3킬로미터쯤을 달렸다. 나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맞춰줄 수 있었다. 몸도, 마음도. 그러니까 나에게 달리기는 더 이상 ‘도전’이나 ‘훈련’이 아니었다. 기록이 중요하지도 않았고, 내 상태에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어서 다른 모든 것엔 스위치를 꺼두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러한 내가 된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지 않던 일을 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면서, 들어보긴 하였으나 별로 경험한 적 없던, 무엇과도 비교할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기쁨을 누렸다. 달리는 내내, 모든 순간을 영원처럼. 물론 한 번도 허덕이지 않으면서, 하나도 힘들지 않게.

나보다 나이가 열 살쯤 많은 친구들은, 경기가 시작되면 신경 쓰지 말고 달려나가라고 했었다. 처음엔 나도 그래야지 했다. 그게 서로 편할 거라고 생각했고, 어차피 달리기는 혼자 하는 거니까. 산산한 날씨와 자연의 기운, 대회라는 자극은 혼자 달려도 충분히 즐길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달리는 경험을 하고 나니, 친구들과 함께 달리는 것이 마땅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달리면서, 옆에서 발소리와 숨소리를 듣고, 찡그린 얼굴과 흘리는 땀을 보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일으키고 뿌듯해 하는 마음을 느끼고, 같이 설레고 같이 지치고 같이 웃는 일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잃을 것은, 그날 내가 달리기에 최선을 다했을 때 잘하면 갱신할 수도 있는 기록뿐이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다른 참가자들도 살필 수 있었다. 시계와 땅바닥만 보면서, 도대체 언제 끝나나, 아직도 이것밖에 못 달렸단 말인가, 그만 달리고 걸을까,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문득, 인생도 그러한가, 또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조금만 힘을 빼고 달리면 이렇게나 편한데, 이렇게나 평화로운데. 최선을 다한다는 바람직한 마음가짐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고 싶다는 건실한 태도로, 목표를 높게 잡고 나를 긴장시키고 혼자서 밀고 끌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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