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력의 나라’ 영국, 에너지 전환으로 미래 경제 선점 나선다

지난 2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워털루역에서 서쪽 방향으로 기차를 타고 1시간30분가량 이동한 버크셔주 위너시 마을, 영국에서 한국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한국전력거래소와 같은 구실을 하는 ‘국가에너지시스템공사’(NESO·National Energy System Operator)를 방문했다. 중앙전력관제실에 들어가자 한국 전력거래소와 마찬가지로, 영국 전 국토 위를 지나는 대동맥과 실핏줄 같은 전력망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주로 인구가 많이 사는 잉글랜드를 파란색 선(40만볼트)이 지나고, 빨간색 선(27만5천볼트)과 보라색 선(13만2천볼트)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북쪽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 지역을 지났다.

석탄 0%, 가스 30%, 원자력 13.8%, 바이오매스 9.2%, 수입 13.8%, 풍력 32.8%, 수력 0.4%.

관제실 화면에 띄워져 있는 이날의 영국 전체 전력 발전 비중을 살펴보니, 풍력발전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날의 무탄소전력원 지역별 비중은 스코틀랜드 남부 100%, 북부 스코틀랜드 86.9%, 잉글랜드 북부 55.6% 등 전국 평균 51.4%였다. 영국은 지난달 30일 석탄화력발전 가동 142년 만에 처음으로 마지막 남은 랫클리프온소어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해 석탄발전량을 0으로 떨어뜨린 최초의 주요 7개국(G7) 국가가 됐다. 영국 정부는 ‘청정전력 2030’ 계획을 발표해 2030년까지 전력 부문에서의 모든 탄소배출량을 없애는 걸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는 중간목표로 삼고 있다.

재생에너지를 앞세운 무탄소 전원이 50%에 육박하는데도 전력 공급과 수요의 균형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전력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안정적 상태를 드러내는 주파수(영국 50㎐, 한국 60㎐) 기준에 근접한 49.5㎐를 기록 중이었다. 영국은 이러한 국가 전체 전력망을 관리·운영하는 제어실을 이곳뿐 아니라 이곳에서 5마일(약 8㎞) 떨어진 곳에 ‘복제’해 운영하고 있다. 테러 등 최악의 상황이 발생해 두 곳이 모두 작동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세번째 제어실은 북쪽 지역에 따로 두고 있다.

크레이그 다이크 시스템 운영 책임자는 “2019년 약 3개월 동안 전혀 석탄발전을 가동하지 않은 적이 있고 결국 (5년 만에) 석탄발전 가동을 안정적으로 끌 수 있었다. 내년 10월을 목표로 (남은 가스발전까지 끄는 등) 탄소배출을 하지 않고 전력망을 운영해보는 계획도 이미 수립돼 있다. (날씨와 계절,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재생에너지가 늘었을 때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관리 시스템과 신기술 개발에 이미 우리는 매우 유리한 위치에 올라서 있다. 이곳 직원들은 (정부가 결정한) 2030년 전력망에서의 탄소중립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이러한 자신감은 석탄→재생에너지와 같은 에너지 전환에도 안정적인 전력망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섬이지만 에너지망은 섬이 아니다. 이날 영국 전체 실시간 전력 공급(2만7332㎿)보다 수요(3만671㎿, 한국의 절반 이하)가 많았지만 수입(Transfer·3345㎿)으로 부족분을 충당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 유럽 대륙과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과의 재생에너지 수입과 수출이 자유롭다. 다이크는 “(유럽 사람들이 유로스타를 타고 영국해협을 건너듯) 에너지도 케이블을 통해 영국해협과 북해를 건넌다”고 말했다. 전세계 나라들이 기저전력(장기간 고정적으로 운영 가능한 전력원)으로 주로 사용하는 석탄과 원자력 발전과 달리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대(낮·밤)에 따라 발전량의 편차가 커 이를 가스와 같이 기동정지가 간편한 발전원으로 대체 운영하고 있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전력의 실시간 공급과 수입에 격차가 발생하더라도, 이웃 나라들로부터 수입과 수출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셈이다.

이날은 이곳이 민간 소유가 아닌 공공의 소유로 바뀐 직후였다. 영국 에너지 규제기관 오프젬(Ofgem)의 통제 아래 있었지만, 민간 에너지 시설 운영 업체인 ‘내셔널 그리드’가 이곳(ESO)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부채를 포함해 6억3천만파운드(약 1조1천억원)에 영국 정부가 다시 사들이고 전날부터 공공이 운영하기 시작했다. 단, 독립적 운영을 위해 소유 주체는 비영리 공익법인이 맡고, 영국 정부 기관이 이사진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공공이 운영에 나선 이유도,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수소 등 미래 다양한 에너지로의 전환과 관련이 있다. 영국 정부의 계획대로 언젠가 전력망에서 탄소배출을 0으로 하기 위해서는 석탄에 이어 가스발전까지 멈추고 전기차나 수소차 등 교통수단의 연료도 바뀌게 된다. 즉,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수소,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방식의 에너지 기술과 운영체제를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종합 관리할 단일 기관이 있어야 했다. 다이크는 “정부는 우리에게 (전력망 운영과) 관련해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추천할 것도 권한다. 이 때문에 에너지를 운반하는 전력 송배전망 전반, 또 이에 필요한 신기술과 경제성도 살펴봐야 한다”며 “2030년까지 580억파운드(약 102조원)를 투자하는 것이 현재 우리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날 런던에서 만난 아르누에 탄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 영국 전력시장 분석 책임자는 이러한 영국 정부의 에너지 전환 과제를 두고 “모든 시장이 비용을 기준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유럽연합의 탄소 가격 정책 기조를 따라 (탄소배출을 하는) 석탄과 가스의 가격이 비싸졌다. 재생에너지는 초기 투자 비용은 비싸지만 운영과 유지·보수 비용만 발생해 유럽의 기업들이 영국 재생에너지 시장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가 이곳에 초청해 자신들의 성과와 포부를 소개한 외국 기자들은 한국, 일본, 폴란드 기자 5명이었다. 영국이 이 세 나라 언론을 초청한 데는 세계 기후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 싶다는 의도가 있다. 영국은 전세계 국가들의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독려하고 싶어 하는데, 이때 도움이 필요한 나라가 바로 이 세 나라다. 선진국 중 탈석탄 속도가 늦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느린 대표적인 나라들이다.

일본은 미국, 뉴질랜드와 함께 지난해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한 나라이다. 세계 기후환경단체들의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반환경적 나라를 꼽아 시상하는 특별한 상이다. 일본의 2030년 에너지 전환 계획을 보면 재생에너지 3638%, 원자력 2022%, 천연가스 20%, 석탄 19%로 화석연료 비중이 40%에 육박한다.

폴란드와 한국은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총회를 앞두고 석탄화력 발전을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선언에 서명해놓고도 2049년까지 석탄발전을 유지하겠다는 의향을 비친 ‘친석탄’ 국가로 당시 외신의 주목을 받은 나라들이다. 원전이 없는 폴란드는 지난해 기준 석탄발전의 비중이 전체 전력원의 68%로 높다. 한국은 2030년 석탄화력 발전 17.4%, 신재생에너지 발전 21.6%가 목표이다.

1일 만난 마이클 섕크스 영국 에너지안보탄소중립부 차관에게 세 나라 언론을 부른 이유를 넌지시 물어봤다. 그는 “재생에너지는 새로운 숙련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폴란드나 한국, 일본과 같은 국가에서도 (우리처럼 에너지 전환이) 매우 큰 경제적 잠재력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에너지 전환을 독려했다.

안전 놀이터

See al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