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요리 경연 프로그램인 ‘흑백요리사’가 장안의 화제다. 백수저(유명 요리사) 20명과 흑수저(무명 요리사) 80명 총 100명이 단계마다 다른 과제를 두고 겨뤄 우승자가 나왔다. 필자도 재미있게 봤는데 특히 ‘미각적 착각’이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셀럽의 셰프’라는 이름의 흑수저 요리사는 ‘베지테리언 사시미’(채식 생선회)라는 요리를 만들었는데, 얼핏 보면 평범한 모둠회다. 그런데 이름대로 식물성 재료로만 만들었다. 요리사는 기발하지만 단순한 조합으로 착각을 불러일으켜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인 식당을 운영하는 안성재 심사위원의 혀를 속이는 데(물론 기꺼이 속아준 것이지만) 도전해 성공했다. 훈제한 비트와 아보카도에 고추냉이를 얹어 김에 싸 간장에 찍어 먹으면 참치의 식감이 느껴지는 식이다.
편의점 제품으로 요리를 만드는 패자부활전에서 흑수저 ‘나폴리 마피아’가 만든 ‘밤 티라미수’도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인 티라미수는 커피, 카카오, 마스카르포네 치즈 등으로 만드는데 편의점에는 없는 재료다 보니 여러 제품을 가져와 전부 또는 일부를 써서 그럴듯한 가짜를 만들었다. 이걸 먹어본 두 심사위원이 놀란 눈으로 서로 마주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 장면은 ‘흑백요리사’의 백미다.
2차 준결승인 무한 요리 지옥은 참가자 7명이 두부를 주제로 30분 안에 요리를 완성하는 과제로 한명씩 탈락한다. 그 결과 6차에 걸쳐 27가지 두부 요리가 탄생했는데, 이 가운데 백수저 에드워드 리가 만든 ‘켄터키 프라이드 두부’가 특히 기발했다. 두부를 닭다리처럼 잘라 ‘닭을 튀긴 기름’에 튀긴 요리로 심사위원들은 “닭이야 두부야”라며 즐거워했다.
필자가 이처럼 미각적 착각에 흥미를 느낀 건 음식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오늘날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30%가 음식 관련 활동에서 나온다. 특히 동물성 음식이 20%를 차지한다. 지구촌 인구와 소득이 늘면서 이대로 가면 2050년에는 육류 소비량이 50% 더 많아질 것이다.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더라도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최근 대체육 연구가 활발하다. 그 결과 식물 기반 육류와 배양육 등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시장도 커졌지만, 고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식물 기반 육류의 경우 진짜 고기의 풍미와 식감에 가까워지기 위해 첨가물과 가공 에너지가 점점 많이 들어감에도 ‘진짜보다 비싼 가짜’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가축의 세포로 만드는 배양육은 비용이 많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보통 고기보다 훨씬 비싸고 이는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과학자들이 ‘흑백요리사’에서 영감을 얻어 생각의 유연성을 키운다면 이 난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풍미, 성분과 식감을 최대한 가깝게 해 진짜 고기를 흉내 내다 보니 점점 복잡해지고 비용은 올라간다. 흑백요리사의 상상력을 발휘해 과감한 재료의 조합과 가공법을 개발하면 단순하지만 맛과 가격 경쟁력이 있는 대체육 또는 고기보다 맛있는 새로운 음식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탄소중립을 위한 요리 경연 프로그램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