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 그릴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머리카락... 채식주의자 읽어볼 것” 노벨상 초상화가 엘메헤드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스포츠 경기나 공연에 임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엄청난 부담감이 따르는 일이죠. 전세계 수백만명이 매일 제 그림을 보게 될테니까요”

매년 10월 노벨상 발표 주간이면 세계에서 가장 바빠지는 사람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공식 초상화를 그리는 스웨덴 화가 니클라스 엘메헤드(47)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노벨위원회가 문학·경제·화학·물리·평화·의학 등 모든 부문 수상자 명단을 최초 공개할 때 함께 쓰인다. 지난 10일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초상화도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전날 마지막 부문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초상화 작업을 마친 그를 15일 전화로 만났다.

어제 경제학상을 끝으로 노벨상 주간이 끝났다. 매우 바쁜 한 주였을 것 같은데.

=굉장히 압축적으로 바빴다. 오늘은 전체 수상자들의 초상화를 액자에 담아 노벨재단 본부 사무실 벽에 설치하러 가야한다. 인터뷰가 끝나면 바로 출발할 예정이다.

2012년부터 노벨위원회 아트디렉터로 일하며 초상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계기가 있었나. 당신이 채용되기 전까지 노벨위원회는 과거 수상자를 발표할 때 실물 사진을 썼던 것으로 안다.

= 면접을 보러갔는데, 면접관이 “수상자를 발표할 때 사진을 첨부해야 하는데, 적합한 사진을 못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안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그냥 “그림을 그리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했는데 그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졌다. (웃음)

엘메헤드가 아트디렉터를 맡은 첫해와 이듬해인 2013년에는 실물 사진을 찾지 못한 수상자에 한해서만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주요 외신에서 수상자 기사에 그가 그린 초상화를 쓴 것이 예상치 못한 큰 호응을 얻으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2014년 노벨위원회는 그에게 “우리(노벨상)의 고유한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처음 3~4년 간은 검은색 윤곽선과 파란색을 사용했고, 이후부터는 금색을 사용해 양감을 표현했습니다.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초상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죠” .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초상화를 그릴 때는 얼마나 걸렸는지 물어봐도 되나.

=작업 시간은 정말 엄청난 비밀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

초상화를 그리면서 한강 작가 얼굴의 어떤 부분을 강조하려고 했나. 특별히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

=머리카락을 표현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기억난다. 캐리커쳐 같은 화풍과 단시간에 완성해야 하는 작업 특성상 인물의 외적 특징을 단순화 해야 하는데, 긴 머리나 수염 같은 특징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그녀(한강)의 긴 머리카락을 10개·12개의 표현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한강 작가가 쓴 책을 읽어본 적 있나.

=아직 못읽어봤다. (종이책보다는) 보통 그림을 그리면서 오디오북을 많이 듣는데, 아직 내가 사용하는 플랫폼에는 한강의 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보통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면 전세계적으로 폭발적 반응이 있고, 시장도 커지기 때문에 곧 그녀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노벨위원회에서 여러사람들이 ‘채식주의자’를 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읽는 책도 그 책이 될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당신은 매년 역사를 기록하는 셈이다. 초상화를 그릴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나.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 작업은 스포츠 경기나 공연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일주일 이상 매일 내 그림을 보게된다. 제한된 시간에 한정된 도구와 스타일로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엄청난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준비를 해야한다.

10년 이상 노벨상 수상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왔다. 그리기 가장 어려웠던 사람은 누구인가.

=한명을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보통 참고할만한 사진이 제한적인 경우에 애를 먹는다. 작가들의 경우 평소 언론 노출이 잦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다양한 사진을 찾을 수 있지만, 학자들은 정 반대인 경우가 많다. 95세의 과학자가 상을 받았다고 가정하면, 내가 찾을 수 있는 사진은 수십년전 그가 실험실 한 구석에서 찍은 저화질 사진 뿐인 경우도 있다. 이런 제한적인 상황에서 최대한 인물이 잘 표현될 수 있게 그려야한다.

그럼 그리기 가장 쉬웠던 사람은 누구인가.

=역시 특정인물을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보통 주름이 있는 경우 그리기 쉽다. ‘거친 얼굴(rough face)’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검은 윤곽선이나 양감을 표현하는 금색으로 강조하기 쉽기 때문이다.

엘메헤드는 노벨위원회 심사위원과 함께 수상자 정보를 사전에 알게되는 극소수의 인물 중 하나다. 수상자 발표와 동시에 초상화가 공개되는 탓에, 미리 그림을 그려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수상자를 언제 통보받는지, 작업에 얼마나 걸리는지는 절대 알려줄 수 없는 극비사항”이라고 강조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수상자에 대한 정보를 슬쩍 알려준 적도 없나. 알려주지 않나.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수상자 정보는 철저히 혼자만 알고 있다. 내게 주어진 책임이 크고 막중하기 때문에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이 일을 계속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수상자들보다 빠른 시간 내에 그렸던 인물은 스베틀라나 알렉세이비치(2015년 노벨문학상)와 밥 딜런(2016년 노벨문학상) 정도다.

노벨상 시즌이 아닐 때는 뭘 하며 지내나.

=스튜디오에서 개인 작업을 하기도 하고, 다른 고객들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한다. 지금은 스웨덴 축구국가대표팀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나 모션그래픽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몇주 간은 기존에 작업하던 프로젝트를 재개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노벨상 주간이 이제 막 끝났기 때문에) 다음 주에는 좀 쉬엄쉬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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