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 영어보다 중요한 것

우리는 흔히 국제회의에 참석하거나 외국인 관광객 유치활동을 할 때 영어로 대변되는 외국어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물론 외국어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하고,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알아들고 반응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을 기울인다. 기업에서 인재를 선발할 때도 외국어 능력이 출중하면 우수 인재라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럼 과연 가장 중요한 가치일까?. 인간이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맞추는 사람을 거의 본적이 없다.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놀랍게도 7% 정도란다. 해외 유수한 언어학자들의 말이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우리가 대화를 할 때, 표정, 자세, 음색, 톤, 분위기, 소리의 강약, 말의 속도등에 따라 같은 말도 완전히 다른 말이 돼 버린다. 소위 말하는 바디랭귀지가 통하는 이유도 7% 보다는 93%의 영역으로 커뮤니케이션하기 때문이다.

2001년 호주 멜버른, 필자는 당시 호주여행작가협회총회를 한국으로 유치하고자 협회 이사들과 다각적으로 접촉하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었다. 현지의 다른 행사를 마치고 저녁에 만났다. 만찬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총회 유치 이야기를 할 계획이었다. 이런 저런 환담을 나누다가 우연히 한국의 역사 이야기가 소재가 되었다. 필자가 대화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영어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분은 한국인인 필자보다 우리 역사에 대해 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에서 밀렸다면 필자가 그렇게 민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총회 유치의 성패를 떠나 필자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만남이었다.

2010년 브루나이 반다르세리베가완. 필자는 아세안+3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3국이 참가하는 역내 관광진흥회의였다. 출국 전 전차대회에 참가했던 분에게 대체적인 회의의 전개방식이나 분위기, 우리의 역할들에 대해 미리 자문을 구했다. 한국관광에 관한 10분 정도의 브리핑만 하면 안건은 아세안국가들끼리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회의가 시작되자 의장이 매 안건마다 한중일 3국에게 입장을 묻는 것이었다. 각본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관련 내용이 담당 업무였기 때문에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로 대응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내용을 몰랐더라면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영어가 아니라 콘텐츠였던 것이다.

2014년 미국 뉴욕, 어느 날 본부에서 전문이 날아 왔다. 모 학회가 총회를 한국으로 유치하고자 하는데, 중국과 경합 중이란다. 미국쪽 학회 이사진들 앞에서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실시하니 현지 지사장이 참석해 유치 지지 스피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내슈빌에 도착해 보니 한국에서 학회분들이 와 있었다. 사실상 한국으로 결정된 회의라고 했다. 본부에서 전달받은 내용과 일치했다. 약 5분 정도의 스피치가 시작됐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최종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유치 실패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중국이 미국학회쪽에 다양한 재정적 기여가 있었고, 중국 유학생 숫자 등의 변수가 원인이었다. 역시 유치 관련 핵심 콘텐츠를 간과한 결과였다.

필자가 종사하고 있는 관광 분야는 외국어가 필수인 영역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콘텐츠다. 영어만 잘 하는 사람을 앞세우면 외국관광객이나 국제회의 유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자기 업무와 영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 문사철로 대변되는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 배려, 존중 등이 협상과 대화에서 외국어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영어에 투자하는 시간의 절반만 업무와 독서와 사색에 투자해 보기 바란다. 당신은 훨씬 더 매력적인 사람, 유능한 인재가 돼 있을 것이다.

유세준 세종문화관광재단 관광사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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