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ʺ영화가 재희 목소리 살렸다ʺ

박상영(36)은 한국 문학의 비주류였던 퀴어 문학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작가다. 2019년 세상에 나온 연작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창비)이 그 주인공. ‘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등 네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원작은 2022년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부커상 롱리스트(1차 후보)에 오르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박상영은 34세, 등단 7년차였다.

이 작품은 퀴어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10만부가 넘게 팔렸고 부커상 후보에 오른 이듬해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국내에서는 젊은작가상대상과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

이달 ‘대도시의 사랑’을 영화와 드라마로 만날 수 있다. 1일 개봉한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원작 중 ‘재희’만을 118분 영상에 담았다. 동명 드라마(티빙)는 단편 네 편이 전부 담긴 8부작으로 오는 21일 공개된다. 드라마는 박상영 작가가 직접 극본을 썼다. 지난 11일 전화로 그와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원작자의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A : 너무 좋았어요. 소설은 화자의 목소리에 기대잖아요. 화자는 영이고요. 그래서 재희에겐 가려진 부분이 있었는데 영화가 그걸 충실하게 복원했구나 생각했습니다. 원작의 캐릭터를 더 살려주셨다고 할까요. 소설에 없던 에피소드를 볼 때 ‘내가 썼더라도 재희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Q :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재희를 연기한 배우 김고은은 이 영화를 두고 “다름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설명했습니다. A : 저도 같은 마음이에요. 고은씨가 작품을 정말 깊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Q : 소설과 영화가 다른 부분도 있죠. 그중 어떤 장면이 가장 좋았나요. A : 임신 중절 수술을 하러 산부인과에 간 재희가 진료실의 자궁 모형을 들고 뛰쳐나와 자신의 책상에 장식물로 꽂아두는 장면이요. 소설에서는 훔쳤다가 바로 돌려주잖아요. 근데 영화에서는 그걸 집으로 가져와 책상 위에 두고두고 봐요. 또 결정적인 순간에 반격의 도구로도 활용합니다. 이런 오브제가 재희의 서사를 강화하는 장치로 쓰였다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Q : 원작 ‘재희’의 매력은 캐릭터의 생생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 ‘진짜 재희’가 이걸 읽어도 괜찮나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영화에도 그런 생생함이 잘 담겼고요. A : 맞아요. 그래서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재희가 누구냐, 재희에게 허락은 받고 쓴 거냐…(웃음) 대학 시절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여자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들이 모티브가 되어 주었죠. 소설을 쓰면서는 우리 그때 뭐 재밌는 일 없었냐고 많이 물어보기도 했고요. 그들의 20대가 섞여서 재희가 태어났어요. 물론 각색을 많이 했습니다. 당연히 허락도 받았죠.

Q : 소설 속 화자 ‘영’은 ‘박상영’을 상상하게 합니다. 영이 불문과를 나왔다는 점도 그렇고요. (박상영 작가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A : 일부러 그렇게 썼어요.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길 원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몰입이 잘 될 것 같아서요.

Q : 영화에 깜짝 등장도 하시잖아요. (영화에는 흥수가 박상영 작가의 수상 기사를 읽는 장면이 있다) A : 어쩐지 감독님이 사진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넣어 달라고 한 건 아닙니다. 그렇게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웃음)

Q : 극본 작업 이야기를 해볼게요. 속마음을 다 전달할 수 있는 소설을 쓰다가 대사와 지문의 세계로 넘어갔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A : 문자 매체는 속마음을 쓰면 끝나는 거지만 영상 매체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없고 다 보여줘야 하잖아요. 또 소설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지전능하게 컨트롤할 수 있지만, 드라마는 제작진이 있고, 영상으로 표현하는 데 고려해야 하는 현실적인 사정도 있고요. 너무 다른 작업이더라고요. 그런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Q : 이 대목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라거나 ‘이 문장은 무조건 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나요. A :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토씨 하나 바꾸지 말라는 식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재현 방식이나 이게 영상적으로 재미가 있냐 없냐를 따졌다고 하는 편이 맞겠네요.

Q : 드라마 작업만의 재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 소설과 비교했을 때 드라마는 더 노골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작업이에요. 소설과는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죠. 그게 싫지 않았고 배우는 재미도 있었어요.

Q : 극본 작업을 제안 받았을 때 고민도 있었을텐데요. A : 제가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같은 시기에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웹드라마 공모전에서도 당선이 됐어요. 그래서 주저함은 없었던 것 같아요. 기회가 닿으면 작품의 폭을 넓혀가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Q : 소설가라는 정체성에는 변함이 없나요. A : 네 지금도 극본을 쓰고 있지만 전 여전히 소설가예요. 소설을 쓸 때 가장 자유롭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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