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분방하고 직설적인 캐릭터
- 동성애 동거인 役 노상현과 호흡
- 선입견에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 한 번쯤 되새길만한 메시지 던져
올해 최고 흥행작인 영화 ‘파묘’에서 무당 화림으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김고은이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과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대도시의 사랑법’(개봉 1일)에서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MZ세대의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특히 김고은은 출연 제안을 받은 이후 ‘대도시의 사랑법’이 제작되기까지 2년 반이나 묵묵히 기다려 준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고은은 “처음 대본을 받고 그 자리에서 너무 재밌게 읽었다. 진짜 이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너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제작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물론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2년 반의 시간 동안 놀고 있던 것은 아니고, 그 사이에 ‘파묘’를 비롯해 네 편의 작품을 촬영했지만 ‘대도시의 사랑법’을 마음에 두고 묵묵히 기다린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김고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고은은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대본을 받았을 때는 원작이 있는 줄 몰랐다. 나중에 원작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좋은 대본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원작을 읽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2년 반 동안 다른 작품들을 해야 했기 때문에 원작보다는 대본에 중심을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지난 9월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대도시의 사랑법’은 눈치 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와 자신의 존재와 감정을 숨기는 것에 익숙한 동성애자 흥수가 동거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그린 영화다. 김고은은 “재희와 흥수는 20대에서 30대를 거치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시행착오와 성장통을 만난다. 그런 것이 너무 우리네 이야기 같았다”며 “막 치기 어리게 행동하는 재희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래 그때는 그것만 보일 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특별함을 다 내려놓고 사회와 현실에 타협해 보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잘 알겠고, 너무 공감이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까. 김고은은 재희 캐릭터를 더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그려냈다. 그녀는 “재희라는 인물이 막 안타깝기도 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대본을 읽을 때는 친구 혹은 친한 언니 같은 마음으로 재희를 바라봤다면, 연기하면서는 그런 재희가 훼손되지 않게 정말 잘 표현하고 싶다는 느낌이 있었다. 왜냐하면 주변 사람들로부터 재희가 오해를 많이 받지 않는가. 그래서 관객들에게는 재희가 오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영화 속 재희는 겉모습만 보면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하고 싶은 말도 거침없이 내뱉는는다. 하지만 김고은은 디테일한 연기를 통해 재희의 그런 모습은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는 자기방어기제이며, 오히려 사랑을 갈구하고 상처를 잘 받는 인물임을 드러낸다.
김고은은 재희 역을 제대로 연기하기 위해 새로운 경험을 했다. 바로 대학 시절 재희가 클럽에서 열심히 노는 장면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흥수 역을 맡은 노상현과 함께 실제 클럽에 갔던 것이다. 그녀는 “실제 노상현 씨와 사전답사를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왜냐하면 제가 클럽을 가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전답사로 클럽을 가보니 너무 재밌더라. 음악도 너무 좋고, 그래서 정말 신나게 춤을 추는 경험을 했다. 그 경험으로 재희의 클럽 장면들을 소화했다”고 말했다.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재희와 흥수는 동거를 한다. 흥수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둘이 사귀는 것은 아니고 찐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서의 동거다. 영화에는 흥수의 연애와 사랑 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래서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 영화의 색깔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 김고은은 “영화의 퀴어 코드를 이해한다, 안 한다는 문제는 전혀 없었다. 재희는 그런 정체성을 가진 친구에 대해서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도 없는 인물이고, 저도 그런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다”고 전제했다. 이어 “저는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는 어떤 편견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꼭 성 정체성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재희도 자신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는가”라며 영화를 본 후 한 번쯤 되새겨 볼 만한 메시지를 제시했다.
한편 대학생 재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고은의 대학 시절 이야기로 흘렀다. 김고은은 “대학 입학 기념으로 아울렛에서 빨간 트레이닝복을 샀는데 비싸서 하의만 샀다. 연극영화과는 트레이닝복을 입을 일이 너무 많아서 그 때 산 옷을 1학년 내내 주야장천 입고 다녔다. 그래서 별명이 ‘빨간색 츄리닝’이었다. 그래도 인기는 나쁘지 않았다”며 웃었다.
영화의 제목처럼 김고은이 느끼는 현재 MZ세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현재 젊은 친구들의 사랑법을 제가 함부로 얘기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훨씬 더 조심스러워진 것 같긴 하다. 제가 느끼기에는 사랑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도 좀 있는 것 같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더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팍팍해진 삶 때문에 사랑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많아졌고, 그만큼 사랑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해졌다는 뜻이겠다. 자신의 사랑법에 대해서는 “전 오래 봐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인데,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편할 때 나오는 제 본연의 모습들이 나와야지만 관계가 진전될 수 있다”며 “그래서인지 미팅이나 소개팅은 해본 적도 없다”는 조금 의심스러운(?)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