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부산을 두고 우스갯소리로나 하던 표현이 어느새 부산 대표 수식어로 자리 잡았다. 부산이 경공업 발전을 주도하며 우리나라 ‘산업수도’ 역할을 하던 1960년대 전후, 이곳으로 대거 유입돼 정착한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제 은퇴해 ‘초고령화 사회 부산’의 주역이 되어 버렸다.
한국 수출의 30% 가까이나 책임지던 잘 나가던 부산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진 건 1970~1980년대 강력한 성장 억제책 영향이 컸다. 정부는 1972년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자 부산을 서울과 함께 대도시 내 공장 신·증설 등을 위한 부동산 등기 시 취·등록세를 5배 중과하는 대상으로 지정했다. 1982년에는 아예 ‘성장억제관리도시’로 못 박아 있던 기업도 재배치 명목으로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게 했다.
첫 조치 이후 20여 년이 지난 1995년에야 겨우 족쇄가 풀렸으나 이미 기업과 인구 유출이 심각해진 상황이었다. 회복탄력성이 문제였다. 서울은 우리나라 수도이다 보니 문제가 없었지만 부산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부족했다. 첫 정책 때부터 회복력을 염두에 뒀더라면 현 정부가 굳이 “부산-서울 양대 축으로 균형발전”을 내세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만시지탄 속 지역으로의 기업 재이전(유치) 노력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다. 삼성자동차(현 르노코리아) 유치,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이전, 지역으로의 유턴기업 세제 혜택, 기회발전 같은 각종 특구 지정,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 추진 등 지역경제 부흥을 위한 움직임이 계속된다. 그러나 ‘수도권 블랙홀’이라는 큰 흐름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산업은행 본사 부산 이전 추진처럼 저항이 커 지지부진한 국정과제도 있다. 그나마 참여정부 때부터 시행된 공공기관 이전이 수도권 블랙홀화의 속도를 늦춘 게 성과라면 성과다.
최근 논란이 되는 차등 전기요금제(차등요금제)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지역에서 생산해 지역에서 소비하는(이른바 ‘지산지소’), 즉 수요지 인근에서 전력을 생산·소비함으로써 중앙(수도권) 집중형 전력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지역의 염원을 담아 지난 6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분산에너지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력을 많이 생산하는 지역일수록 전기요금을 낮게 책정한다’는 내용의 차등요금제는 2026년 시행된다. 고리원전 영향으로 부산처럼 전력자급률(지난해 기준 174%)이 높은 지역은, 서울(10%) 같은 낮은 곳에 비해 전기요금을 적게 내도 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반도체 같은 첨단기업을 유치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부산경제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삐걱거린다. 최근 공개된 정부 초안을 보면 지역별(지자체별)이 아닌, 전국을 ▷수도권 ▷비수도권 ▷제주로 단순 3분할해서 차등요금제를 적용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전력자급률이 높은 부산과 3%에 불과한 대전이 같은 혜택(인하된 전기료)을 받게 된다. 3분할 방식이 적용되면 비수도권 중에서도 수도권과 가까운 충청권의 수혜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가뜩이나 수도권이 충청권까지로 비대해졌다는 지적을 받는 마당에 충청권을 흡수한 수도권화를 더욱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국가 간 빈부차를 규명한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교수,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받았다. 왜 어떤 국가는 부유하고 어떤 국가는 가난한가? 이들은 “사회제도의 지속적인 차이 때문”으로 해석했다. 나라의 운명을 가를 만큼, 승승장구하던 경제수도 부산을 쇠락하게 만들 정도로 제도는 힘이 세다. 수도권 비대화가 국가의 비정상적 발전, 대한민국 소멸을 초래할 저출생 등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부작용을 낳는데도 더 강력한 수도권 억제책은 펴지 못할 망정 국가 경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수도권 규제를 풀고, 만들었던 제도(차등요금제)조차도 그 의미를 뭉개버리려는(3분할) 등 지역으로의 ‘재분배’ 제도에 딴지를 놓는 정부의 씁쓸한 현실을 목도한다.
이선정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