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물리학의 오랜 난제인 고온 초전도체와 초유체 현상의 비밀을 푸는 데 한 발 다가서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물질의 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체, 물질의 점성이 사라지는 초유체의 원리를 밝혀내면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 운송, 소재 등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근수 연세대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고체 물질 속에서 전자가 액체와 고체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전자결정 조각’을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17일자)‘에 실렸다.
고체 물질에서 원자들은 규칙적인 배열을 이뤄 움직일 수 없다. 반면 전자들은 마치 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어 전압을 걸어 주면 전류가 발생한다. 1930년대 헝가리 물리학자 유진 위그너는 전자들이 규칙적인 배열을 이뤄 움직일 수 없는 ‘전자결정’을 발견해 196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입자이자 파동인 전자를 결정상태로 만들 수 있으면 영하 240도 이상의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물질의 저항이 사라지는 고온초전도체나, 극저온에서 물질의 점성이 사라지는 초유체 현상의 비밀을 풀 수 있어 현대 응집물질물리학 분야의 주요 연구 분야였다.
전자들의 규칙적인 배열이 있는 경우를 고체 상태에 비유하고, 규칙적인 배열이 없는 경우를 기체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이와같이 전자의 규칙적인 배열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이분법적으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규칙적인 배열이 오직 짧은 거리에만 존재하는 전자결정 조각들을 발견했다. 이는 전자의 액체결정(액정)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연구팀은 선행연구를 통해 2021년 알카리 금속을 도핑한 물질에서 액체와 같은 전자 상태를 발견했다. 이어 후속연구를 통해 더 적은 양의 알칼리 금속을 도핑한 물질의 전자 상태에서 액체 성질뿐 아니라 고체 성질을 동시에 갖는 전자결정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연구팀은 발견한 전자결정을 입증하기 위해 방사광가속기와 각분해광전자분광장치를 이용해 물질에 도핑된 전자의 에너지와 운동량을 정밀하게 측정했다. 그 결과, 미세한 결정 조각이 존재할 때 나타나는 독특한 불규칙성을 관측했다. 전자결정 조각의 크기는 1∼2나노미터 수준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일보다 작다.
연구팀은 규칙적인 배열이 오직 짧은 거리에만 존재하는 전자결정 조각을 발견했다. 전자들의 규칙적인 배열이 완벽한 경우(위그너 결정)를 고체 상태, 규칙적인 배열이 완전히 없는 경우를 기체 상태에 비유하자면, 짧은 거리의 배열만 존재하는 전자결정 조각들은 액체결정(액정) 상태에 비유할 수 있다.
전자결정 조각은 도핑된 반도체나 절연체에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고온초전도 현상 역시 도핑된 절연체에서 발견할 수 있어 향후 고온초전체 현상을 규명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번 연구에서 발견된 전자 상태의 불규칙한 특성은 물질의 점성이 사라지는 초유체의 대표적인 특징과 유사한데, 이를 로톤이라 한다. 오직 짧은 거리의 배열만 존재하는 결정 조각을 통해 초유체와 로톤의 미시적 원리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