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영업점 창구 직원으로 일하는 A(42)씨는 육아휴직 기간이던 지난 7월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다.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담당하는 특수직으로 채용된 A씨는 이미 육아휴직을 두 번 썼고 지난해 7월 셋째를 출산하면서 세 번째 육아휴직에 들어간 상태였다. 세 번의 육아휴직에도 불구하고 그는 특수직에서 처우가 더 좋은 일반직으로 전환된 데 이어 승진까지 하게 됐다. 이 은행 관계자는 “최근 여성들이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고 있고, 육아휴직에 따른 인사 불이익도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육아는 부부 공동의 몫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국내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의 M커브(M-curve) 현상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우리나라 못지않게 M커브 현상이 심각했던 일본도 30대 여성 고용률이 70%대를 넘어섰다.
◇‘육아휴직’ 자유로워져… 30대 여성 고용률 2014년 57.1%→올해 72.1%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10만4996명 수준이던 육아휴직자 수는 2022년 19만9976명으로 거의 2배가 됐다. 또 지난 2015년 남성의 육아휴직급여 수급 비율은 5.6%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5배인 28%로 급증했다. 여성 외에도 육아를 위해 휴직하는 남성 비율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과거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지금 청년 세대에서는 부부가 분담해야 할 일로 바뀌었다.
특히 과거에는 육아휴직에 들어가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관행이 만연해 있어, 아이를 키우려면 일을 아예 그만둬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육아는 여성 경력 단절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다. 그러나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기업 문화가 점차 자리 잡으면서 여성 경력 단절도 줄어들고 있다.
국내 한 광고 회사에 다니는 여성 B(37)씨는 지난 2022년 1년간 육아휴직을 쓰고 복직했지만, 복직한 직후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요즘엔 철저히 성과 중심으로 인사 평가를 하기 때문에 육아휴직 사용 여부가 인사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건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육아 지원을 위해 직장 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3년 619곳에 불과하던 전국의 직장 어린이집은 지난해 1308곳으로 10년 새 2.1배로 증가했다. 직원들이 육아 부담을 덜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아이를 낳은 엄마들의 평균 출산 연령이 33.6세로 높아졌는데도 일하는 30대 여성 비율이 더 올라간 이유다.
◇日도 M커브 탈출… 女 고용률 G7 국가 중 3위
선진국들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 인구 감소에 맞서기 위해 여성 경력 단절 해소를 주요 과제로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M커브 현상이 뚜렷했던 일본은 10여 년 전부터 30대 전후 엄마들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일·가정 양립 정책을 펼쳤다. 2013년 당시 아베 신조 총리 체제의 일본 정부는 저성장 탈출을 위해 ‘여성 활약’을 내걸고 2020년까지 여성 고용률을 70%대로 높이겠다고 했다. 2015년 ‘여성활약추진법’을 제정, 여성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보육 시설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기준 30~34세 일본 여성 고용률은 75.4%로 2012년(56.2%)보다 2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일본의 전체 연령대 여성 고용률은 72.4%(2022년 기준)로 G7 중 독일(73.1%), 캐나다(72.8%)에 이어 셋째로 높다.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 모두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장기 저성장 터널에서 벗어나려면 일하는 엄마가 더 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6월 보고서에서 “여성 고용 증대는 향후 수십 년 동안 경제 성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M 커브(M-curve)
20대에 늘어나던 여성의 경제활동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겪으며 30대에 줄어들었다가 다시 40·50대에 늘어나는 현상.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가 심각한 한국과 일본의 연령대별 여성 고용률 그래프가 알파벳 ‘M’자 모양이라고 해서 M 커브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