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나온 인텔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뉴스는 반도체 업계를 잔뜩 움츠리게 한다. 글로벌 생산공장 규모를 키우고 핵심인력 채용을 늘리며 몸집을 불리는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TSMC 소식은 긴장감까지 고조시킨다.
두 기업의 희비를 가른 건 리더십과 전략적 판단, 외부 환경을 비롯한 여러 요인이 복합적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기술 혁신 차이가 결정적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인텔은 효율과 외형 성장 중심 사고로 어느 순간 기술 혁신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TSMC는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내며 한 우물을 팠다. 그 결과 기술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성장을 이뤄내며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절반 이상을 삼켰다.
인텔과 TSMC의 흥망성쇠가 K반도체에 주는 메시지는 무겁다. 내년까지 불황이 이어질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잇따른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ASML의 부진한 성적표와 중국 반도체 기업의 매서운 추격도 K반도체 위기감을 높인다.
무엇보다 ‘꺾여버린 기세’가 우려스럽다. 시장이 불황일 때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며 계산기만 두드리는 게 경영자의 마음이다. 내년 사업을 계획하는 포부와 희망보다는 현상 유지라도 해야 한다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경쟁사와 외국 반도체 회사로 기술인력이 이직하는 사례까지 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사기가 꺾이는 무형적 손실은 중장기적으로 K반도체 경쟁력을 더 심각하게 흔들 수 있다.
고부가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혁신으로 엔비디아 납품에 성공한 것은 한국 반도체의 가능성과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동시에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수임을 일깨워준다. K반도체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과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인텔과 TSMC 뉴스를 가장 뼈아프게 봤을 한 기업이 있을 것이다. K반도체 업계가 인텔을 반면교사 삼아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