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의 양극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도 양극은 존재했지만 요즘처럼 유난한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된 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고객 길들이기가 한몫한다. 강아지를 훈련시킬 땐 보상을 기반으로 한다. 보상은 먹이다. 플랫폼 기업이 SNS에서 게시물을 훈련시키는 것도 같은 원리다. 다만, 보상이 먹이 대신 ‘좋아요’와 ‘조회수’다. 조회수를 올리려면 게시물은 혐오를 조장하거나 가짜뉴스 같은 자극적인 것이 유리하다. 게시자는 ‘개처럼’ 훈련되고, 시청자는 게시자에게 훈련용 먹이를 무료로 공급하면서 자신도 훈련된다. 인공지능(AI)의 강화학습도 훈련의 기본 수단이 보상이다.
대략 유권자의 양쪽 30%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한쪽에 머문다. 나머지 40%쯤은 왔다 갔다 한다. 양극의 30%가 언론과 SNS를 도배하지만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중간 40%다. 그러니 양쪽 30%는 선거 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별 영양가 없는 집단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80~90% 비율로 한쪽을 지지하는 지역은 선거공학적 입장에서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양극의 집단이 원하는 것과 어디로 갈지 모르는 중간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이 다르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어느 쪽을 우선하겠는가. 진행 중인 미국 대통령선거를 결정하는 곳은 7개 남짓의 경합주다. 민주의 캘리포니아, 보수의 텍사스는 어차피 선거인단이 다 넘어오는 영양가 없는 지역이다.
정치적 두 극단은 눈의 방향만 다를 뿐 성향, 행동, 감정 표현 방식 등 여러 면에서 유사해 보인다. 그래서 정치 지형의 양쪽 극단을 그룹1로 묶고, 중간을 그룹2로 묶는 것이 정치를 감상하기 더 좋은 것 같다. 말하자면 영양가 없는 그룹과 영양가 있는 그룹이다. 40% 정도인 그룹2가 조용하지만 결정을 짓는다.
필자의 연구실에선 요즘 핫한 AI 기반 기술인 트랜스포머로 단어들의 표현을 통해 관계 형성 과정을 관찰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토큰(단어 또는 단어의 부분)이 기본 단위지만 관찰의 목적상 단어를 기본 단위로 강제해서 실험했다. 여기에서 표현이란 각 단어를 실수의 나열(벡터)로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면 1024개의 수로 한 단어를 표현한다. 최종적으로 형성된 각 단어의 표현을 보면 go와 went, lastly와 finally, a와 an 등은 서로 비슷하다. 이처럼 유사어, 유사 기능어가 비슷한 표현을 갖는 건 자연스럽다. big과 small, strong과 weak처럼 반대어들은 표현이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이들은 매우 유사하다. 이걸 보고 한 가지 호기심이 생겼다. 정치적 두 극단은 얼마나 유사할까. far-left(극진보)와 far-right(극보수)의 표현을 살펴봤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극보수는 극진보와 표현이 가까운 순으로 총 5만여 개 단어 중 3등 안에 들 정도로 비슷하다. 왠지 하는 짓들이 비슷하지 않은가.
갈등이 심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치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극단은 묘하게 비슷하다. 얼핏 반대 성향의 사람들 같지만 누구보다도 비슷한 속성을 공유하고 유사성이 많다. 고부 갈등의 대물림을 보거나, 정권이 바뀌어도 하는 짓이 비슷하기 쉽다. 마치 워크숍이라도 하면서 행동양식을 같이 훈련한 사람들 같다. 속성상 그룹1의 두 극단을 오가는 것이 그룹2로 옮기는 것보다 쉬워 보인다.
우리 정치의 양쪽 진영에서 가장 큰 자산은 상대방이다. 웬만큼 개판을 쳐도 상대방이 적절한 똥볼을 차서 희석해준다. 상극은 통한다. 오늘도 위에서는 똥볼을 차고 아래에서는 SNS의 강화 시스템 아래 열심히들 시간을 죽이면서 훈련하고 있다.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