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지난 3분기 시장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기록했다. TSMC는 3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58% 증가한 111억6200만달러(약 15조2730억원)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17일 밝혔다.
TSMC의 3분기 실적은 최근 AI 반도체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흐름과 이 시장에서 TSMC의 장악력이 더 공고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2~3분기 TSMC 매출의 절반 이상은 전부 AI가속기 등 고성능 컴퓨팅(HPC) 분야에서 나왔다.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 등을 고객으로 둔 TSMC는 AI 수요 급증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했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콘퍼런스콜(실적 설명회)에서 “AI 수요는 강력하고,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일부 고객사에서는 ‘AI 수요가 미쳤다(insane)’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AI칩 독식한 TSMC
TSMC는 이날 3분기 매출 235억400만달러(약 32조1580억원), 영업이익 111억6200만달러(약 15조2730억원)를 올렸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6.5%, 영업이익은 58.2% 증가했다. 모두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깜짝 실적이다. TSMC의 매출 총이익률도 57.8%에 달해, 이전에 목표로 한 55.5%를 상회했다.
TSMC의 높은 영업이익은 첨단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급 공정에서 나온다. TSMC는 공정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반도체 회로도가 그려진 웨이퍼(원판) 가격을 크게 올리고 있다. 3나노 공정에서 가격을 20% 올렸으며, 내년 본격 양산할 2나노 공정은 또 배 이상으로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가장 최신 공정인 2세대 3나노 공정에서 앞선 경쟁력으로 빅테크 고객사 주문을 잇따라 수주하고 있다. TSMC의 공정별 매출 비율을 보면, 올해 대량 양산이 시작된 2세대 3나노 공정의 매출이 20%를 차지한다. 이를 포함해 7나노 이하 첨단 공정 매출 비율은 69%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3분기 59%보다 10%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해외 공장 확장과 설비 증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공장 3곳에 650억달러(약 89조원)를 투자했고, 지난 8월에는 독일 드레스덴에 109억달러(약 14조9300억원)를 투입해 유럽 첫 공장을 착공했다. 웨이 CEO는 “미국 애리조나와 일본 구마모토 공장은 점차 성과를 내고 있으며, 애리조나 공장이 단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했다. 올해 설비 관련 투자도 계속 이어간다. TSMC는 올해 투자 액수가 300억달러(약 41조1000억원)를 약간 상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TSMC 쏠림에 고심하는 빅테크
TSMC 경쟁자인 삼성전자와 인텔이 파운드리 확장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당분간 글로벌 빅테크의 TSMC 쏠림 현상은 지속될 전망이다. 오랜 단골 고객인 애플 외에도 엔비디아·퀄컴·AMD·미디어텍 등 미국과 대만의 칩 설계 업체들이 TSMC 최신 3~4나노 공정을 이용하고 있다. 파운드리 경쟁자인 인텔마저도 AI PC용 칩인 ‘루나레이크’ 생산을 위해 자사 파운드리 대신 TSMC 파운드리를 이용하기도 했다.
날로 치솟는 칩 제조 비용에 TSMC 의존도를 줄이려는 빅테크의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특히 밀월 관계인 엔비디아와 TSMC의 관계에도 조금씩 틈이 보이고 있다. 16일 미국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엔비디아와 TSMC는 최근 양산에 들어간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 ‘블랙웰’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TSMC가 만든 테스트 제품에서 결함이 발견돼 출시가 수개월 늦춰졌는데, 양사가 책임을 전가하며 언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디인포메이션은 “엔비디아는 TSMC 의존도를 낮추는 방법을 고려하면서, 게임용 칩(GPU)을 삼성전자에 맡기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