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학대는 네 잘못 아냐” 소년범과 밥먹는 판사들

지난 4일 점심 서울 양재동의 한 고깃집. 서울가정법원 소년부 판사 6명과 소년범 20여 명이 삼삼오오 모였다. 모두 올해 재판을 받고 민간 보호∙복지시설에 입소한 소년범들이다. 소년원에 갈 정도는 아니지만, 풀어주면 부모의 방치나 주변 영향으로 다시 비행을 할 우려가 높아 민간 시설로 보내졌다. 소년부 판사들은 시설 퇴소 전 아이들과 꼭 식사를 함께 한다. 재범 가능성을 판단해 보호를 연장할지 결정하고, 다시 우범지대로 넘어가지 않도록 대화와 격려를 위한 자리다. 판사들에겐 ‘퇴소 전 면담’이라는 업무지만, 소년범들 사이에선 판사와 밥을 먹는다고 ‘판밥’이라고 불린다.

김모 판사는 18세 동갑내기 이지훈(가명)군, 박민기(가명)군과 앉았다. 이혼 가정 출신의 이군은 방황하다가 자살 시도를 했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박군은 사춘기 반항심으로 비행을 저질렀다. 재판을 하며 속사정을 아는 판사들은 매달 시설에서 보내오는 보고서를 보고 아이들의 상태를 관찰한다. 김 판사는 이군에게 “(자살 등) 잘못된 생각이 들면 언제든 말하라”고 당부했고, 박군에겐 “학대는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위로했다.

“동네 아는 애들이랑 지내면 또 사고 칠 거 같아서, 아무도 모르는 강원도에 가서 고깃집에 취업할까 해요. 카카오(뱅크)에서 ‘청년 대출’ 받아 보증금 마련하려고요.”

박군의 계획을 들은 김 판사는 “다른 대출 방법은 없을지 알아보렴” 하며 조언했다. 판사들로서는 아이들의 퇴소 후가 더 걱정이다.

연애 상담도 이뤄진다. 이성 문제는 비행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 판사가 “재판 때 만나던 여자 친구랑 어떻게 됐어?” 하고 묻자, 이군은 부끄러운 듯 “바람나서 헤어졌어요”라고 답했다. 김 판사는 “연애는 많이 해보는 게 좋아. 너무 여친한테 퍼주지 말고”라고 했다. 소년전문법관 김형률 부장판사는 “면담을 하다 보면 제가 담임 선생님 같다”고 했다.

이날 ‘판밥’은 한 시간 반 만에 끝났다. 시설 복귀가 아쉬운지 몇몇은 판사에게 “편지를 쓰겠다” “명함을 달라”고 했다. 판사들은 시설 퇴소 후에도 소년범들에게 종종 전화를 한다. 김봉남 판사는 “퇴소해도 판사가 ‘너를 보고 있다’고 경각심을 줄 수 있다.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라 이런 관심만으로도 크게 개선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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