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은 총재가 쏘아올린 ‘대입 지역 비례 선발제’

이창용 한은 총재가 지난 8월말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한은이 공동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상위권 대학들이 지역별 학령인구에 비례해 학생을 선발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이 총재는 그 후에도 여러 기회에 같은 아이디어를 이야기했고, 언론 매체들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마도 교육 당국이나 교육전문가 아닌 경제학자가 대입제도를 거론하니 새로운 관점을 기대하는 면도 있는 듯하다. 한은의 논리는 수도권, 특히 강남 학생들의 상위권 대학 입학률이 지방에 비해 많이 높아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리고 집값 상승을 초래하니 그 요인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대학 교육의 다양성 등도 거론하나 사실 교육 자체보다는 교육의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대입제도를 바라보자는 입장으로 보인다.

「 “지역별 학령인구에 비례해서 뽑자” 대입제도의 사회경제적 함의 고려 하지만 대증요법으로는 해결 불가 미래 창의인재 육성 방안 마련해야 」

서울 강남 지역, 특히 대치동은 한국 사교육의 메카이다. 온갖 종류의 학원이 있으며, 소위 전문적인 대입 카운슬링도 쉽게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이 같은 사교육이 실제로 대학 입학에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서울대에서는 두 번의 대표적인 연구가 수행된 바 있다(김광억 등 2003, 김세직 등 2015.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서울대 교수 시절 첫 번째 연구에 참여하였다.) 두 연구에서 모두 부모의 학력 등 다른 요인들을 감안하더라도 서울 강남지역 학생들의 서울대 입학률이 타지역보다 상당히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즉 사교육이 실제로 대학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이 ‘기회의 사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지위 대물림의 수단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면 대입에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도입하는 것이 해결책일까. 이 제안에 대해서는 거주지를 이유로 강남에 사는 학생들을 역차별하는 것이어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점이 이미 지적되었다. 물론 지역별 교육 기회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방법까지 쓰는 것이 옳은 일일까. 게다가 한은이 기대하는 수도권 과밀과 집값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모이는 이유는 자녀 교육 이외에도 좋은 직장이나 의료와 문화 수준 등 여러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은의 제안이 좀 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경제정책 연구기관답게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어야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이 제안이 과연 교육적으로 옳고 현재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인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대학입시제도를 크게 바꾸는 것은 우리나라 교육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일이라서 매우 어렵다. 그러기에 역대 정부는 본질에는 손대지 못하고 여론의 눈치를 보며 이런저런 수정들을 가해 이제 우리 대입제도는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교육전문가들 사이에는 수능을 비롯한 현재의 대입제도는 수명을 다했으므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교육의 본질인 미래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AI가 주도하는 4차혁명 시대에는 많은 지식을 아는 것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할 줄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대학입시도 과거처럼 주어진 지식을 토해내는 능력보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워주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사실 지금도 대학입시제도는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많이 왜곡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수능에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만 나오는 현실이다. 교육적으로는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사고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서술형 문제도 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채점의 ‘공정성’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의구심이 걸림돌이다. 실제로 객관식 문제가 사회경제적으로 공정하다는 증거는 없지만(사교육이 수능 점수 올리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그렇지 않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숫자로 표시되는 점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서술형 문제 도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서술형 문제 채점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IB(국제 바칼로레아) 교육에서 하듯이 채점관을 여러 명 위촉하고 채점관별 채점 기준을 보정하는 방법 등이 이미 알려져 있지만, 여론 때문에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창용 총재의 지적대로 우리 학생들은 과도한 경쟁에 몰려 불행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 불행의 주범은 한 줄서기를 강요하는 대학입시이다. 교과과정을 몇 년씩 앞서가는 선행학습이 유행하고, 수능 응시자의 3분의 1이 재수생이며, 초등학교 의대 준비반이 생기는 사회가 정상적인가. 우리나라에서 대입제도가 단순히 교육 문제를 넘어 사회경제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옳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하나의 부정적 현상을 치료하는 대증요법으로는 안되고 교육의 본질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전 총장

먹튀 사이트 검색

See al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