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제국의 언어에서 각국의 언어로

변화는 벼락같이 찾아왔다. 스웨덴 한림원에서 호명한 ‘한강’이라는 이름이 울림을 만들고 있다. 축하 메시지가 쏟아지고, 책 판매가 늘고, 각종 기념사업이 진행되는 일이야 새삼스럽지 않다. 누군가는 시기하고, 폄훼하고, 어기대는 일도 낯설지 않다. 큰 성과에는 호들갑과 반발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구태여 여기에 말을 더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보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한국의 문화예술은 꾸준히 세계 무대에서 성취를 거둬왔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칸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으며, 넷플릭스 순위를 석권했다. 웹툰, 웹소설, 게임 등도 약진하고 있다. 이제 번역이 어려워 진입 장벽이 높다고 평가되던 문학까지 대열에 합류했으니, 더는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은 명백한 선진국이다. 적어도 문화예술 분야만큼은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이런 평가에 조심스럽다. ‘선진국’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고, 강점보다 약점에 눈길이 가며, 애써 이룩한 성과가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을까 우려한다. 자칫 ‘국뽕’에 도취되지 않았나 스스로 검열한다. 신중한 접근이야 나쁘지 않지만, 이런 판단은 낡은 패러다임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백하다.

거칠게 구분하면 지난 세기는 제국(帝國)의 시대였다. 몇몇 열강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우열과 위계는 분명했으며, 중앙과 변방의 격차가 선명했다.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런 역학 관계가 유지되었다. 문화예술도 다르지 않았다. 할리우드 키즈들이 영화를 만들었고, 일본 아이돌 시스템을 도입해 K팝의 체계를 잡았으며, 권장도서 목록은 유럽의 고전을 중심으로 작성되어 왔다.

이 패러다임 안에서 한국은 늘 변방이었고, 더 세련된 선진 문물을 따라 하는 일이 당연했다.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제국의 언어를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한국 문화는 어디까지나 열강과 비교 당하며, 그들을 기준으로 파악되었다.

하지만 세기가 바뀌고 패러다임도 변했다. 열강의 영향력은 줄고, 우열 관계는 복잡해졌으며, 위계가 재편되었다. 중앙의 독점적 지위는 해체되어, 분야마다 각기 다른 중앙을 형성한다. 더 이상 세계는 단일한 기준으로 서열화되지 않는다. 여러 층위가 누적되어 다양한 기준이 작용한다. 중앙과 변방의 지위도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관계는 유동적으로 바뀐다. 어제의 중심이 오늘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오늘의 변방이 내일까지 머물지 않는다.

이제 각국(各國)은 나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자의 언어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번역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기존 체계에 편입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 변화를 뚜렷하게 증명한다. 그동안의 수상작들은 모두 제국 혹은 그 인근의 언어로 창작되었다. 작가의 출신 지역이야 다르지만, 언어만큼은 지난 세기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한강은 최초로 제국의 언어에서 벗어난 수상자다. 그러하기에 한국 사회를 돌아볼 기회가 된다. 우리는 여전히 낡은 패러다임에 익숙하고, 제국의 언어가 만드는 서열화와 중앙 중심 주의에 빠져 있으며, 나아가 거부할 수 없는 변화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우리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가졌고, 변방이라고 마냥 뒤처지지 않으며,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운다. 선진국에 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문화예술에서는 독창성이 중요하다. 기존 작품을 따라 해서는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이제야말로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를 펼칠 때가 되었다. 최수웅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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