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부쳐] 세계 정상의 문화와 후진국 정치가 병존하는 2024년 한국

(시사저널=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국가생활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네 분야로 나눈다. 우리 헌법도 전문에서 이 네 가지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건국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헌법 전문은 헌법재판소의 판례대로 단순한 선언적 의미를 넘어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적 호력을 갖는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건국한 지 76년이 된 오늘날 이 헌법 전문의 실현 여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 계기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이를 다루는 세계 주요 언론의 진지하고 비중 있는 보도 내용이다. 참으로 한강 작가가 자랑스럽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큰 자부심을 느낀다. 잘 알려진 대로 한강 작가는 이미 영국의 맨부커상과 프랑스의 메디치상 수상을 통해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있었다. 이제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되어 세계 정상급 작가임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여성 작가로서 아시아 최초의 수상자라는 영예는 한강 작가와 우리나라를 더욱 빛나게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가 열광하는 K문화를 통해 문화 영역에서 세계의 선두국가임이 확인되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K팝은 지구 곳곳에 알려져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우리 영화와 드라마는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 문화는 세계적인 반열에 올라섰다. 그에 더해 K문화의 위력은 많은 나라 젊은이들이 우리 문화와 더 가까워지려고 한글을 공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화 다음으로 국위 선양한 분야는 ‘경제’

이처럼 세계가 관심을 갖고 열광하는 K문화는 자생적으로 발전했다는데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문화국가 이념에 따라 국가가 문화 불간섭·중립주의를 지킨 결과 가능한 일이었다. 국가 예산을 가장 적게 쓴 문화 부문이 국가 예산을 가장 많이 쓰는 정치 부문보다 먼저 세계 정상 수준에 이르렀다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문화 다음으로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영역은 한국 경제다.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도약했다. 우리 헌법의 자유주의 경제 이념에 따라 우리 경제 질서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결과다. 반면 세계 정상 수준으로 성장·발전하던 원자력 산업은 국가의 원전 폐기 정책을 통한 국가 간섭과 규제로 오히려 퇴행했다는 사실도 분명히 경험했다.

NGO로 지칭되는 사회 분야는 어떠한가. 사회는 국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국가에 대한 투입(input)을 통해 국가 정책을 비판·통제하는 중요한 기능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사회의 이원적인 정치구조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사회단체는 그같이 건전한 투입 기능보다는 정계 진출의 교두보로 악용되며 변질되고 있다. 그것은 건전한 사회단체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정치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후진 사회 현실이다.

국회의 다수결 원리는 독재 수단으로 타락

그리고 우리의 정치 영역은 날이 갈수록 후진국으로 퇴보하고 있다. 국민 세금을 가장 많이 쓰는 정치가 그 퇴보의 진앙지다. 국회의원에게 헌법이 명한 청렴의무는 지위를 남용한 부정부패로 타락했고,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라’는 명령은 당리당략에 따른 직무수행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22대 국회에서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당을 통해 자신의 수많은 범죄 혐의를 막으려고 당을 사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이 정당에 명한 당내 민주주의는 실종되고 대표의 심기와 뜻이 군주의 명처럼 지배하는 정당에서 정당민주주의는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정치사와 정당사를 통해 전무후무한 야당의 탈선적인 정치 행태가 우리 정치를 병들게 하고 국민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한다.

정치적인 화제를 기피하고 정치와 단절하는 국민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다수결 원리는 다수의 독재 수단으로 전락했고 복수정당제의 필수적 요소인 정책 결정에서의 타협과 절충은 실종된 지 오래다. 무조건적인 다수결 의결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유도해 정부 비판의 소재로 삼고, 아니면 말고 식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퍼트려 사회를 혼란하게 하고, 국회 국정감사는 중형을 선고받은 형사피고인의 허위사실 홍보장으로 변질되고, 언필칭 ‘국민의 대표’를 자처하는 국회의원들이 유아독존의 자만심에 가득 차 큰 소리와 막말과 모욕의 경쟁에 몰두하는 국회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은 말문이 막힌다.

최근 들어 더 심해지는 대통령 탄핵 문제도 그렇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 탄핵 사유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 요건에 ‘중대한’을 보태 ‘중대하게 위반한 때’로 해석하고 있다. 대통령 부인의 결혼 전 문제나 결혼 후의 처신은 대통령의 직무집행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이어서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 세계 탄핵사상 대통령 부인을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는 사례는 전무하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대통령 탄핵이 헌법의 탄핵 요건을 충족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개딸’로 상징되는 민주당원과 좌파 사회단체뿐이라고 확신한다. 침묵하는 다수 국민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따름이다. 탄핵 추진 세력이 탄핵을 애완견 이름처럼 반복하면서 당대표의 수사검사 탄핵에 이어 대통령 탄핵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이유도 국민은 잘 알고 있다. 유죄 선고가 옥죄어 오는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죄 확정판결로 피선거권을 잃기 전에 하루속히 대통령을 ‘끌어내려’ 대통령선거를 앞당기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위중한 정치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일치단결해 대처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당정 갈등을 이어가며 지지자들과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민주적인 정당에서 정책을 놓고 당정 갈등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힘과 정부의 갈등은 그런 건전한 갈등이 아니라 한동훈 당대표의 거듭된 매끄럽지 못한 언행에서 비롯된 당대표와 대통령의 감정싸움 양상을 띠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욱이 정체불명의 정치 브로커가 나타나 허풍을 떨며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을 농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탄이 급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처럼 지리멸렬한 국민의힘의 모습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정치단체로 변질된 민주노총과 좌파 재야 세력과 손잡고 박근혜 탄핵의 꿀맛을 떠올리며 탄핵집회를 더욱 가속화하려고 획책하고 있다. 심지어 탄핵심판 기관인 헌법재판소를 기능 마비시켜 무정부 상태를 만들어 방탄 수단으로 쓰려고 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법을 어기면서 10월17일 임기가 끝나는 세 명의 후임 재판관 추천을 아직도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세 명의 헌법재판관은 국회에서 여야가 각 한 명 그리고 여야가 협의해 한 명을 추천하는 것이 국회의 확립된 관행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관행을 어기고 2명을 자신들이 추천하겠다고 우기면서 헌법재판소가 심판정족수 재판관 7명 미달로 헌법이 부여한 중요한 국회 통제 기능을 못하게 막으려 한다. 다행히 기능 마비 3일 전에 헌법재판소가 취임 직후 이유 없이 탄핵소추되어 직무정지 중인 이진숙 방통위원장의 헌법소원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심판정족수를 규정한 헌법재판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비상수단으로 야당의 불법적인 꼼수에 제동을 걸었다. 지금이라도 여야가 관행에 따라 재판관을 추천해 헌법재판소를 정상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탄핵몰이를 이어가면서 무정부 상태를 노리는 것은 분명히 내란 선동에 해당한다.

한국 국민, 자유민주주의 꽃 왜 못 피우나

우리 국민은 이 점을 인식하고 필요하면 조국 사태 때처럼 수십만 광화문 집회를 통해서라도 내란 선동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

2024년 대한민국은 세계 정상 수준의 문화 영역과 후진국으로 추락한 정치 영역이 극과 극의 대비를 이루는 매우 기이한 상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주권자의 어깨는 무겁다. 국민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이런 상황은 더 악화할 수도 개선될 수도 있다. 우리 국민은 세계가 인정하는 활력과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처럼 현명한 국민이 왜 제대로 자유민주주의를 꽃피우지 못하는지 한국에 관심을 갖는 많은 외국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필자도 외국인으로부터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궁색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은 인정이 많아 공과 사를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이성보다 감성의 지배를 더 받아 정치인의 포퓰리즘에 쉽게 휩쓸리는 것이 원인인 것 같다고. 이 대답이 옳은지는 몰라도 그런 측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젠 우리 정치를 문화 수준으로 선진화하기 위해 공과 사를 구별하고 감성보다 이성에 따라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투표와 투입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헌법의 명령처럼 우리 ‘후손들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가 성찰하고 변해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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