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응급실로 가슴에 칼이 꽂힌 남자가 긴급히 이송된다. 남자의 왼쪽 젖꼭지 바로 아래에 생선 칼이 꽂혔는데 칼자루가 심장박동에 따라 틱-틱-틱-틱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심장외과이자 혈액외과 의사인 저자는 과연 피를 통제해 이 환자를 살릴 수 있을까.
생명과 동일시하는 피를 과학적·철학적·역사적으로 다룬 책이 출간됐다. 저자 라인하르트 프리들 의학박사는 독일 심장외과 분야의 선구자로, 심장 수천 개가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공동저자 셜리 미하엘라 소일은 프리랜서 작가로 수많은 책을 출판했다. 둘의 공동 작업으로 이 책은 과학서·에세이·픽션의 경계를 넘나든다.
가슴에 칼이 꽂힌 환자는 쉴 새 없이 “미안합니다"를 반복한다. 환자가 말할 수 있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죽기 직전까지 말하는 과다 출혈 환자도 있기 때문이다. 중상을 입으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돼 남아 있는 마지막 피를 심장과 뇌로 보낸다. 그 대신에 아드레날린은 혈관을 수축시켜 다른 기관의 혈액 공급을 최소화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긴박한 심장 수술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피 검사를 할 때 팔꿈치 안쪽에서 채혈하는 이유도 알려준다. 몸 전체 정맥 어디서든 피를 뽑을 수 있다. 하지만 팔꿈치 안쪽 정맥이 피부에서 가장 가깝다. 이곳의 정맥은 상대적으로 굵고 눈에 잘 보이고 잘 만져진다. 또 이곳은 신경말단이 촘촘하지 않아 찌를 때 덜 아프다.
피는 액체 기관이다. 다른 모든 기관을 관통해 흐르며 그것들을 연결한다. 몸에 피가 흐르지 않으면 순환도 혈압도 맥박도 없다.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병이 생긴다. 심장마비와 뇌졸중부터 우울증, 면역 질환, 악성 종양, 장폐색, 피로, 불임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관에 적용된다.
피는 적절한 속도와 압력으로 흘려야 한다. 심장이 뛸 때마다 산소가 풍부한 선홍색 피가 좌심실을 빠져나온다. 이 피는 대동맥을 통과해 점점 가늘어지는 동맥과 세동맥을 지나 모세혈관에 이른다. 피는 심장에서 초속 1.5m의 빠른 속도로 분출되지만, 모세혈관에서는 다섯 배 느리게 흐른다. 모세혈관에서 피와 각각의 체세포가 직접 접촉하며 생명을 실현한다. 이후 산소가 얼마 남지 않은 검붉은 피는 가느다란 정맥에서 점점 굵어지는 큰 정맥으로 흘러 우심실로 돌아간다. 이어서 폐로 가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피에는 무수한 정보가 담긴다. 거의 모든 병원 진료는 피 검사로 시작된다. 모든 진단의 60%가 혈액 수치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전 기관과 작은 세포들마저도 피를 통해 자신의 안부를 전한다. 감염됐는지, 희귀 유전 질환이나 심장 또는 신장 질환이 있는지, 건강 상태가 양호한지, 세포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등.
피에 정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피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피부는 혈액순환이 가장 잘되는 기관이다. 피부는 쉽게 혈색을 드러내 우리의 건강 상태뿐 아니라 기분까지도 알려준다. 이로 인해 예로부터 사람들은 피에 진실이 들어 있고 피는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우리의 언어에는 피, 의식, 영혼의 삼각관계를 이용한 관용어구가 많다. 마음 아픈 일이 발생하면 영혼 또는 심장이 피를 흘린다고 표현한다. 지쳤을 때는 피가 다 빠져나간 기분이라고 하고, 마음이 차가운 사람을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박윤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