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모리슨은 한강 작가와 여러모로 닮았다. ‘남성’과 ‘백인’ 중심의 문학계에서 각각 흑인 여성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책 ‘보이지 않는 잉크’는 자신의 자리에서 장벽을 넘은 위대한 소설가 모리슨의 글을 모은 에세이다. 그는 “비전적 힘과 시적 의미를 특징으로 하는 소설에서 미국 현실의 본질적인 측면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으로 199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락 연설, 프린스턴대 강연록 등 경이로운 글들을 한 권에 담았다.
잉크의 본질은 텍스트를 눈으로 읽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잉크’란 게 가능할까. 그리고 만약 비가시적인 잉크가 존재한다면 의미는 뭘까.
우리 시대의 책은 본질적으로 ‘종이와 잉크의 합’이다. 잉크로 적힌 언어는 의미를 형성하고 그것의 독서는 사유로 이어진다.
그러나 책의 구조를 생각할 때 자주 망각하는 책의 부분이 있으니 바로 여백이다. 공간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나 잔여 또는 부산물로 취급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모리슨은 행과 행의 사이, 즉 이 여백에서 눈으론 관찰되지 않지만 반드시 은폐돼 있는 ‘무엇’을 발견한다. 모리슨에 따르면 그것은 “독자가 발견하기 전까지 행간에 그리고 행의 안팎에 숨어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그런 잉크로 적혀 있는 문장들.
책 읽기를 상상해보자. 그 책의 내용에 공감한다면 우리는 책의 다음 장으로 이동한다. 그렇게 책의 결말에 다다르고 독서는 종결된다. 그러나 모든 독자가 느끼는 감동이 항상 동일했던가. 어떤 독자는 보이지 않는 잉크로 적힌 무엇을 알아챈다. 책을 좋아하거나 깊이 사유할 능력이 있는 자만이 그런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비밀스러운 가치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것을 포착해낸다.
작가는 잉크로 글을 쓰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글을 쓰는 자가 된다. 문장이나 명제의 겉면에 드러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글을 읽으면 독자는 책의 안쪽이 아닌 바깥으로 유인당한다. 그리고 ‘책의 안팎’을 동시에 바라보게 된다. 모리슨은 “독자를 책 바깥 환경으로 유인해야 한다"며 안정적인 텍스트의 개념을 버리고 보이지 않는 잉크로 쓴 글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능동적인 독자는 그것을 알아챈다.
모리슨에게 소설 쓰기란 단지 선물 같은 환희는 아니었다. 그는 소설 쓰기를 “인류에게 없으면 안 되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우리는 죽는다. 이것은 인생의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를 한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척도일지도 모른다(We die. That may be the meaning of life. But we do language. That may be the measure of our lives. 노벨 문학상 수락 연설)“고 쓴다.
[김유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