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 정치판의 ‘스톡홀름 신드롬’

(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팬덤 지지자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50여 명의 의원들이 의회정치와 정당정치를 나락으로 이끌고 있다. 그들은 의견을 달리하는 여야 의원들 속에서 합리적 토론을 이끌 수 없는 사람들이며, 협력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공격과 야유를 통해 일이 안 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정치를 정치답지 못하게 만드는 이들 소수의 거친 목소리 때문에 나머지 250명의 의원이 같은 존재로 경멸당하는 게 우리 국회의 현실이다.”

‘팬덤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정치학자 박상훈이 2023년 8월에 출간한 《혐오하는 민주주의: 팬덤 정치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에서 한 말이다. 사실 나는 지난 총선 때 정당들, 특히 민주당의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 파동을 지켜보면서 “정치인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십 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알았던 1인 보스 정치가 디지털혁명과 팬덤을 만나 부활하면서 다시 보스 정치의 졸로 전락한 정치인들의 처지가 너무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는 1973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인질강도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시 은행 직원 4명은 6일간 인질로 잡혀 있으면서 당한 폭력적인 상황을 잊어버리고 강자의 논리에 동화되어 인질범의 편을 들거나 심지어 사랑하는 행태마저 보였다. 심리학자들은 이 놀라운 현상을 ‘스톡홀름 신드롬’이라고 불렀다. 이 신드롬이 현재 한국 정치판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느 유형의 조직에서건 사람 사는 세상인지라 권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아첨은 있기 마련이지만, 그건 겉으론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정치, 그것도 팬덤정치판에서 아첨은 공개적으로 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속된 말로 ‘안면철판’을 까는 강심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야만 한다. 그게 바로 충성의 증거니까 말이다.

처음에야 “세상을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에 망설임이 있었겠지만 처음이 문제지 한번 저지르고 나면 부끄러움에 무감각해지는 ‘후안무치 효과’가 나타나면서 당당해지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도 살기 위해 앞다투어 아첨 경쟁에 뛰어들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게 올바른 삶이라는 생각마저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계파의 줄을 잘못 섰거나 아첨 능력이 모자라 낙오된 낙천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되면 자신에게 안락과 행복의 지위를 허락한 보스에게 더욱 뜨겁게 충성해야겠다는 결의마저 다질지도 모르겠다.

정치인들은 인과응보니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를 즐겨 쓰지만, 이 말의 용법은 철저히 내로남불이다. 절대 다수 유권자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냉소로 무장한 채 선거를 증오·혐오 감정의 발산 기회로 이해한다. 상대 진영을 밟아주는 게 정의일 뿐 자기 진영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갑질엔 별 관심이 없다. 누가 어떤 몹쓸 짓을 저질러도 그건 진영 전쟁을 위한 워밍업일 뿐 정의와는 무관하다.

진영을 초월한 정의감각을 가진 정치인은 소멸당한다. 보스와 팬덤에 영합하고 아첨하는 자들이 번영을 누린다. 팬덤은 진영 전쟁에서 저질의 극치를 치닫는 전사를 선호한다. 이런 정치판에서 도태당하는 이들이나 성공하는 이들 모두 제물로 소비될 뿐, 영광은 오직 이런 구도를 이용하고 강화하면서 아첨·충성 경쟁을 조장하고 향유하는 보스의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불쌍하고 취약한 직업이 또 있을까. 국정감사는 의원들이 살기 위해 쥐어짜내는 아첨과 충성으로 인한 살인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기회일 터이니, 혹여 ‘갑질 국감’이나 ‘호통 국감’을 욕해선 안 되겠다. 그래, 그렇게라도 연명하시구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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