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대통령·한동훈 21일 ‘용산 차담’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21일 오후 4시30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만난다. 한 대표의 독대(獨對) 요청 이후 4주 만에 성사된 자리다. 그러나 독대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18일 오후 5시 대변인실 명의로 70여 자 한 줄 공지를 통해 이같이 전했다. 별도 브리핑은 하지 않았다. 여권에선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만남 치곤 이례적으로 조율 과정에서 진통을 겪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회동은 오·만찬이 아닌 차담 형식으로 하기로 했다. 또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둘의 만남이 아니라,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까지 배석한다. 당초 한 대표가 요청했던 형식의 독대는 성사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한 대표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정부와 여당을 대표해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니, 배석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7월 30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비공개로 만났을 때도 정 실장이 배석했다.
쟁점은 어떤 대화가 오갈지다. 일단 양측은 대화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지만, 한 대표 측은 김건희 여사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한 대표는 10·16 재·보궐선거 이튿날인 17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대통령실 김 여사 라인 인적 쇄신 ▶김 여사의 대외 활동 중단 ▶의혹 규명을 위해 필요한 절차 협조 등 3대 의제를 제시했다. 특히 의혹 규명과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으로 한 대표 측은 특별감찰관 임명을 주장하고 있다.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한 상황에서 용산 대통령실 내부의 철저한 자체조사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신지호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은 18일 라디오에서 “회동에서 특별감찰관 임명 문제가 이야기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전날 재차 발의한 ‘김건희 특검법’을 두고 한 대표는 “민주당이 하는 건 실제로 뭘 하겠다는 취지가 아니라, 거부될 것을 알면서 가능성 현실성 없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반대했지만, 친한계를 중심으로 국민의힘이 ‘단일대오’를 유지하려면 한 대표의 3대 의제에 대해 대통령실의 전향적 반응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도 김 여사 문제에 대한 사과나 제2부속실의 신속한 설치 등 출구 전략을 고심하는 기류다. 민심이 좋지 않은 걸 인식하고 있어서다. 실제 한국갤럽이 지난 15~17일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김 여사의 공개 활동에 대해서는 ‘줄여야 한다’ 응답이 67%로 ‘현재대로가 적당하다’(19%), ‘늘려야 한다’(4%)를 압도했다.
대통령실은 그러나 한 대표가 제안한 ‘3대 의제’에 대해 즉답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김 여사가 이미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 회동을 앞두고 마치 죄인이나 문제의 중심에 선 것처럼 삼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다만 다음 달 11일 임기 반환점을 계기로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이나 국민과의 대화 등을 통해 김 여사 문제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 이후 윤 대통령이 약속한 분기별 소통 차원인데, 5월과 8월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을 했다.
한 대표가 장기화한 의·정 갈등과 관련해 책임자 교체 등을 거론할 가능성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한 대표가 최근 주장한 인적 쇄신과 맞물려 의대 증원 사태의 용산 혹은 부처 책임자 교체를 대통령에게 건의해, 여·야·의·정 협의체 물꼬를 트려고 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권에선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대척점에 선 이슈 말고도, 합의할 수 있는 이슈를 의제로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야권의 탄핵 몰이에 대한 공동 대응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회동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가고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민주당의 탄핵 공세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고위 관계자도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 시도 등 야권의 습관적인 탄핵 공세는 당정이 함께 방어할 문제”라며 “이 문제는 대통령과 한 대표가 회동에서 의견 합치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18일 재·보선 낙선 인사차 곡성을 찾아 민주당의 심 총장 탄핵 추진에 대해 “민주당이 탄핵하지 않는 공무원이 어디 있나. 다 하고 있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다만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의 냉기류를 근거로 회동에서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결국 핵심은 여사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는가에 대한 이견을 좁힐 수 있느냐 여부”라며 “접점을 찾지 못한다면 빈손 회동으로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회동을 계기로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더 멀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17일 당무감사위를 구성했다.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의 한 대표 공격 사주 의혹과 총선 백서 유출 의혹, 명태균씨가 2021년 여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57만 건의 당원 연락처를 유출한 의혹이 조사 대상이다. 한 대표는 특히 명씨 건과 관련해서는 친한계 박정훈 의원이 발의한 ‘명태균 방지법’을 통해 재발 방지 대책을 강조하고 있다. 한 대표는 전날 최고위 회의에서 “국민을 기만하는 여론조사 장난질은 정치불신을 키워왔다”며 “우리는 말로만 하지 않고 제도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선 “명태균 리스트에 여권 인사 여러 명의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한 대표는 전혀 무관하지 않나. 일종의 차별화 전략”이라는 반응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