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에는 표어(標語)의 홍수 속에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실에는 혼·분식 장려운동을 독려하는 ‘내가 먹는 혼·분식, 내 몸 튼튼 나라 튼튼’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고, 거리 곳곳에서는 ‘자나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같은 불조심 관련 표어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늘 특정한 주제를 주고 표어를 만들어오라는 숙제가 많아 매번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최근 국가기록원 사이트에 있는 1966년 인구총조사 홍보 영상을 본 적이 있다. 10분 분량의 흑백 영상 말미에도 당시 대국민 홍보용으로 제작되었던 표어가 나온다. ‘알려주자 우리식구, 알아보자 나라식구’ ‘살펴보자 찾아보자, 빠진 사람 행여 있나’란 문구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직설적이고 거친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정확한 인구조사, 이룩되는 경제개발’이라는 또 다른 표어는 1960년대 시작된 경제개발계획과 연계해 인구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의성 있는 문구였다.
1925년부터 시작해 5년마다 실시해온 인구총조사는 그동안 우리가 사는 모습을 살펴보며 대한민국의 초상을 기록하고 미래를 위한 초석을 만든 중요한 국가통계 기본 조사였다. 특히 1960년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가족계획 정책, 인구 3000만명 시대를 연 1970년대의 중산층 문화 수준 파악과 정책 수립, 1980년대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한 신도시 건설, 2000년대 닷컴 시대 정보화 강국으로의 도약 등 인구총조사는 국가 발전의 기틀을 세우기 위한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내년은 우리나라 인구주택총조사가 100년을 맞이하는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2025 인구주택총조사는 우리 국민이 살아온 10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100년을 설계하는 중요한 조사가 될 것이다. 통계청은 내년 조사에서도 다변화하는 사회현상을 반영하기 위한 질문 항목에 관해 전문가 및 국민 의견 수렴 등을 통한 종합적인 검토를 진행 중이며, 또한 국민들의 응답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대규모 인구주택총조사를 앞두고 1년 이상의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통계청은 정확한 조사구 설정과 주택 통계의 품질을 제고하고자 오는 11월 전국의 거처 및 가구 기초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가구주택기초조사를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전국적으로 실시한다. 특히 올해 가구주택기초조사에서는 전국의 옥탑, 반지하 현황도 함께 파악해 정부부처와 지자체 주거 지원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로 제공할 예정이다.
2025 인구주택총조사를 준비하기 위한 올해 가구주택기초조사의 슬로건이자 표어는 ‘내일의 변화는 우리의 이야기로부터’이다. 올해 조사에서 들려주는 국민의 목소리가 정확할수록 내년 100년을 맞는 인구주택총조사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국민이 들려주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인구주택총조사 100년과 대한민국의 빛나는 미래 100년이라는 건축물의 소중한 초석이 될 것이다. 조사에 참여하는 국민과 조사를 지원해주는 지자체에 고마움을 미리 표한다.
[이형일 통계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