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게이트’가 정국을 뒤덮고 있다.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면담에서도 ‘명태균’ 해법 논의를 피할 수없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리스크’에 대한 대응수위도 찻상에 오를 것이다. 여권은 탄핵풍으로 커지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형국이다. 정권의 명운이 걸린 사안이지만 정부는 일을 해야 한다. 어차피 정권은 유한하다. 정권의 운명은 이런 위협에 대한 관리능력 못지 않게 정책의 수립과 집행의 성과로 평가된다. 뒤집어 말하면 정책의 성과가 정권의 평가에 미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뚝심을 말한다. 미일간 관계 정상화나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해 설명할 때 ‘개혁’이란 말을 쓴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은 ‘윤 대통령이 하는 게 뭐냐’고 반문한다. 국민의 실생활과 관련된 단기과제에 대한 대응능력에 대해 ‘무능’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정부 핵심 기능의 하나는 변화하는 미래에 대한 대비이다. 많은 정책전문가들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벤처 붐’이 오늘날 IT산업의 디딤돌이 됐다고 평가한다. 윤석열 정부가 앞으로 5년, 10년 뒤 한국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지를 묻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한국의 미래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6월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을 1.9%로 추정했다. OECD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 아래로 추정한 것은 처음이다. 내년에는 1.7%로 떨어진다는 게 OECD 추정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만큼 한국 경제 기초체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경쟁력을 어떻게 끌어 올릴 것이냐는 문제는 연구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이다. 이미 나와 있는 답을 실행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그럴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는 문제이다. 윤 대통령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언급하면서 꼽는 게 있다. 연구개발 지원확대를 통해 미래 과학기술력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저출생 등 인구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구상도 기자회견을 통해 제시했다. 풍선처럼 부풀고 있는 수도권 1극체제가 아니라 부산을 핵으로 하는 남부 경제권 발전을 통한 2극체제를 강조한다. 수도권이 충청과 강원까지 팽창한 상황에서 부산을 핵심으로 하는 남부 경제권을 키워 충청까지 밀어 올리자는 정책구상이다. 윤 대통령은 이미 임기 절반을 보냈다. 그런데도 이들 과제가 실제로 정책으로 입안되고 실행되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17개 시·도 시장 도지사들은 윤 대통령의 남부 경제권에 대한 의지에 고무돼 여러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박형준 시장은 지난달 10일 서울에서 정책콘퍼런스를 열었다. 같은 달 30일 영호남시장·도지사와 국회의원들이 모여 남부권 발전을 위한 정책들을 제안했다. 지난 8일에는 대구에서 영남권 5개 시·도 시장 지사들이 모인 영남권미래발전협의회도 가졌다. 핵심은 남부 경제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광역지방정부의 지역경제개발 및 지역경제정책 개선에 대한 건의였다. 대표적으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 기회발전특구 투자기업 맞춤형 지원정책, 수도권 밖 본사 이전 법인세 감면, 하천 준설 권한 확대 등이 거론됐다. 권한을 놓지 않으려는 중앙부처를 움직이는 것은 윤 대통령의 몫이다. 윤석열 정부 2년간 성과가 제자리인 것은 결국 윤 대통령의 뜻이 부처이기주의 앞에서 무력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18일 관저에서 박 시장, 김두겸 울산시장, 박완수 경남지사와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남부 경제권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실행하지 않는 말은 불신을 낳을 뿐이다.
윤 대통령이 신설키로 한 인구전략기획부도 지난 7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여당이 발의한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애초 저출산에만 초점을 맞춘 인구대응전략도 문제이다. 지난달 2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노인일자리사업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서울대 이철희 교수는 ‘인구변화와 노동시장의 미래’라는 기조강연을 통해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급감하면서 노동시장에서 미스매치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분석했다. 통계청의 2072년까지 생산연령인구 중위추계를 근거로 한 것인데, 여성과 장년인구 경제활동참가율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이른바 노동시장에서 ‘파워 시니어’(Power Senior)가 도래할 것인데, 정부의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령화는 부산을 비롯한 지역 대도시권에서 심각한 수준이다. 대통령 소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중 지역의 요구를 대변할 ‘지역위원’이 부재한 상황을 해소해 달라는 대구시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명태균, 김건희 여사 문제에 쓰는 에너지의 절반이라도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일에 써야 한다. 안그러면 자리가 무슨 소용이겠나.
손균근 서울본부장 겸 선임기자·㈔한국지역언론인클럽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