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가 중국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제조했는지를 두고 미국 정부가 조사를 시작했다. 20일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 등 외신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TSMC가 화웨이용 스마트폰·AI 반도체 제조에 관여했는지 조사 중이다. 화웨이가 다른 중개회사를 내세워 TSMC에 접근해 AI 반도체를 확보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익명의 소식통은 “미국이 엔비디아 칩의 중국 수출을 막으면서 중국 기업들이 화웨이가 만든 AI 반도체를 쓰고 있는데, 화웨이 반도체 제조에 TSMC 관여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라며 “화웨이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조사 대상”이라고 전했다.
◇”서버 제품과 유학생 통해 AI칩 우회 수급”
이번 조사에서는 TSMC가 주문을 처리하기 전 고객 확인(KYC) 검사 등 실사를 엄격히 했는지 여부가 관건이다. 또 중국에서 만든 프로세서를 탑재한 화웨이의 스마트폰 ‘메이트60′ 시리즈도 조사 대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TSMC 측은 지난 18일 “(우리는) 법을 준수하는 회사이고 수출 통제를 포함한 법률과 규정을 준수할 것을 약속한다”며 “규제 당국을 포함한 당사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등 규정 준수를 보장하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TSMC는 미국의 대중국 제재가 본격화한 2020년부터 화웨이의 신규 주문 처리를 중단한 상태다.
미국 제재 속에서도 중국은 우회 통로를 통해 AI 반도체를 확보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중국과학원, 산둥인공지능연구소 등 중국 대학 및 연구기관은 미국 수퍼마이크로와 델이 제작한 서버 제품을 통해 미국 엔비디아의 AI 반도체를 확보했다. 중국은 또 유학생 등을 통해 엔비디아 칩을 입수하기도 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중동 국가 등 중국의 우회로가 될 수 있는 국가도 수출 통제를 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미국이 AI 반도체의 중국 유입을 전방위적으로 막으려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의 AI 개발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AI 경쟁력도 확보해나가고 있다. 중국 기업에 자국 기업이 개발한 칩을 우선 도입하라는 압박을 하고 있는 데다, 최근 10년간 AI반도체를 비롯해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한 펀드에 투입한 금액만 120조원이 넘는다. 중국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AI 시장 규모는 68조6098억원으로 4년 전인 2020년(31조1111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상반기 중 AI기업 23만7000개 늘어
중국 내 AI 관련 기업 수도 급증하고 있다. 기업 데이터베이스 플랫폼 ‘치차차’에 따르면, 중국 내 AI 관련 기업은 올해 상반기에만 23만7000개가 늘어 총 167만개로 집계됐다. 작년 한 해 동안 새로 창업한 AI 기업 수는 46만7000개로 2018년(5만6000개)보다 8배 이상 늘었다.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게 아니다. AI 모델을 평가하는 아레나(LMAreana.ai)가 처리 속도·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매긴 거대언어모델(LLM) 상위 10개 모델 중 2개 모델이 중국 스타트업에서 만든 모델이다. 6위가 작년 3월 설립된 중국의 ‘01.ai’의 ‘이-라이트닝(Yi-Lightning)’이었고, 9위가 지푸ai의 ‘glm-4-플러스’다. 나머지는 오픈AI, 구글, xAI, 메타 등 실리콘밸리 빅테크가 만든 모델이었다.
구글의 중국법인 사장 출신인 이카이푸가 창업한01.AI는 설립 8개월 만에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3700억원)를 넘어서며 유니콘으로 등극하기도 했다. 중국의 ‘AI 4대 호랑이’로 불리며 최근 기업가치 200억위안(약 3조7000억원)으로 평가받은 지푸AI의 AI 모델은 빅테크인 메타의 라마 모델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급 AI 반도체를 확보하기 어려운 중국 AI 스타트업들은 사양이 낮은 AI 반도체로도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에 집중해 비용을 낮추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쌓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라이트닝’의 추론 비용은 토큰(AI가 텍스트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기본 단위) 100만개당 14센트에 불과하다. 오픈AI의 ‘o1-미니’가 26센트인 점을 감안하면 46%가량 저렴하다. GPT-4o는 4.4달러에 달한다.
FT는 “중국 AI 스타트업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사양 AI 반도체와 인건비가 낮은 컴퓨터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전략으로 가격을 낮췄다”며 “알리바바, 바이두, 바이트댄스와 같은 중국의 기술 대기업들도 추론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격 경쟁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