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은 어떻게 실패하나 [왜냐면]

김원섭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정부가 연금개혁의 재개를 위해 제안한 개혁안은 세가지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보험료는 13%로, 소득대체율은 42%로 인상한다. 연금 급여의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한다. 둘째, 보험료 인상 속도를 세대별로 차등화한다. 셋째, 다층 연금체계를 개선한다. 하지만 연금개혁의 성공을 낙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정부 개혁안은 지금까지의 연금개혁 주요 방향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개혁은 성공하기 어렵다.

첫째, 연금개혁의 목표가 적절하지 않다. 개혁안은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보험료는 인상하고, 급여는 자동조정장치로 삭감한다. 연금 급여는 물가에 맞춰 인상해야 시간이 지나도 실질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데, 이번 개혁안은 급여의 물가연동을 거의 정지시키는 것이다. 이 조치가 연금 급여를 상당 부분 삭감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국민에게 큰 희생을 요구하는 이러한 조치는 연금재정 파탄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를 반영한다. 이들은 인구 고령화로 국민연금이 파산할 것이고, 후세대는 보험료 폭탄을 맞을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연금재정은 나쁘지 않다. 2019년 우리나라 공적연금 지출은 국민총생산(GDP)의 3.3%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평균인 7.7%의 절반도 안 된다. 고령화로 향후 지출이 늘어나겠지만, 2060년에도 오이시디 평균 예상치 10.3%에 근접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재정 파탄에 대한 우려는 근거가 없고, 의도적으로 과장된 것이다.

반면 새 개혁안은 공적 연금제도의 존재 기반을 약화시킨다. 공적 연금제도는 국민에게 은퇴 후 최저생활 이상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2023년 국민연금 노령연금의 월평균 급여액은 남성 75만원, 여성 39만원에 불과하며, 기초연금도 약 32만원에 그쳐 최저생활을 보장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 결과 상대적 노인빈곤율은 약 40%로 오이시디 국가 중 최악의 수준이며 중국, 일본, 대만보다 두배나 높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혁안대로 급여를 또 삭감한다면 연금제도는 제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또 이번 개혁안은 노인 세대의 노후를 젊은 세대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편향된 전제를 가지고 있다. 이에 기반해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 소득대체율 인상, 물가 연동 정지 등 젊은 세대의 불이익을 상대적으로 경감하는 조치를 계획했다. 하지만, 연금 급여는 젊은 세대가 온전히 책임질 일이 아니다, 연금제도는 세대 간 계약 이전에 국가와 시민 간 계약이다. 현대 국가는 시민에게 치안, 안보, 복지와 같은 핵심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연금 약속’은 그 일부다. 즉 국가는 일정 소득을 보장해 노년에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연금 약속은 모든 선진국에서 국가의 핵심 과제로 정착해 있다.

연금 약속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도, 보험료 납부로만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는 시민들이 수행하는 국방, 교육, 노동, 조세 납부의 의무에 대한 반대급부로 제공한다. 따라서 연금 약속은 시민과 국가 간 법적 계약이며, 이를 지키지 못하는 정부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는 이제라도 연금에 대한 책임을 젊은 가입자에 떠넘기지 말고, 연금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적연금의 최소 및 적정 수준을 정의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개혁을 실행해야 한다. 무조건 보험료를 올리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이번 개혁안은 절차적으로도 하자가 있다. 성사된 연금개혁 대부분에서 정부는 전문가들의 협조를 받아, 야당과 타협점을 찾아서 개혁을 추진한다. 이번 개혁도 여야와 전문가들이 참여한 국회의 연금특위에서 시작했다. 이후 개혁 논의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일반 국민을 참여시켰다. 이 결과 위원회는 상당한 정도의 의견 접근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구조 개혁이 빠졌다는 이유로 공론화위원회의 개혁안을 거부함으로써 노력이 허사로 돌아갔다. 이후 정부는 새로운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문제는 새로운 개혁안에도 구조 개혁이 빠졌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연금 약속을 통해, 시민의 은퇴를 고통에서 축복으로 바꾸었다. 이 약속을 믿고 시민들은 전쟁에서 목숨을 걸거나, 고된 노동을 감내하거나,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 의무를 기꺼이 수행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다른 어떤 노인보다 많은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 이제는 국가가 연금 약속을 이행할 차례다. 그럴 때, 연금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토토사이트 순위

See al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