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연금, 기간산업 장기 경쟁력 보존에 기여해야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백열화되면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현재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와 관련해 국민연금의 참여 여부가 향후 경영권 향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이번 자사주 공개매수에 참여해 단기 차익을 실현하는 것은 국가 기간산업의 장기 경쟁력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가 핵심 기업을 위협하는 단기자본을 돕는 결과를 초래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지분 7.83%를 보유하고 있다. MBK·영풍 연합과 현 고려아연 경영진 측 다음으로 큰 지분율이다. 이러한 지분 구조하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향후 주주총회에서 결정적인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양측의 경영권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다.

만약 국민연금이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참여하게 된다면 단기 투기자본인 MBK를 돕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고려아연은 모든 주주에게 동일한 혜택을 주기 위해 이번에 취득하는 자사주를 소각할 예정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기존 지분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변수다.

현재 고려아연은 전체 발행 주식 수의 17.5%에 해당하는 362만3075주를 공개매수해 소각할 계획이다. 이를 반영하면 MBK 연합의 지분율은 현재 38.47%에서 약 45~46%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까지 공개매수에 응한다면, MBK가 너무 쉽게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도 있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공적자금인 국민연금이 국가 기간산업을 노리는 단기 자본을 돕는 행위는 국가 경제적 차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는 이미 고려아연은 물론 지역사회, 협력업체, 국내 산업계에 큰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비중국 공급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호주 등 우방국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MBK의 지난 M&A 실행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우려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MBK는 단기적 수익 극대화에 치중해 인수한 여러 기업의 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급격한 구조조정과 과도한 배당을 실시함으로써 기업의 장기적 성장동력을 훼손한 바 있다. 이러한 투기자본이 국가 기간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장악하게 된다면, 고려아연의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제련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차전지와 반도체 소재 등 미래 산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자원 순환과 친환경 기술을 바탕으로 ESG 경영(환경·책임·투명경영)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기업이 단기 차익을 추구하는 투기자본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 피해는 고려아연 한 기업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산업 전반에 미칠 것이다.

국민연금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수익률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장기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번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에 참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국민연금은 단기 투기자본의 경영권 장악을 저지하고 국가 기간산업을 보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본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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