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프로젝트를 35년 동안 이어올 수 있을까. 이상각 신부의 35년에 걸친 프로젝트는 한결같이 물 흐르듯 이어진 여정이었다. 그 여정 속에서 남양성모성지는 그가 바친 시간과 정성으로 차곡차곡 완성되어 갔다. 이 성지는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그의 소명이 실체화된 공간이다. 그 덕분에 남양의 마른 땅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와 페터 춤토어, 그리고 조각가 줄리아노 반지라는 거장의 이름을 품게 되었다.
1991년 성모성지로 결정된 지 20년 후인 2011년에 이상각 신부는 건축가 보타에게 메일을 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 보타의 대성당이 남양에 만들어졌다. ‘건축가가 존경하는 건축가’로 유명한 춤토어는 본인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백지수표도 거절하는 건축가다. 만남 자체가 어렵다는 이 은둔의 대가가 살고 있는 스위스 작은 마을로 신부가 직접 찾아갔다. 이후 5년 뒤인 2018년 춤토어는 본인의 건축물을 남양성지에 만들기로 한다.
보타, 춤토어뿐 아니라 반지 같은 세계적인 거장의 이름이 대한민국 성지에 새겨진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롭지만,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견뎌낸 신부의 끈기와 헌신이다. 30대의 젊은 신부가 65세가 되기까지, 그는 같은 길을 걸었다. 빠르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에게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성지를 완성하는 재료였다.
나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며 일의 속도가 곧 효율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겐 52장의 카드밖에 없다’는 말을 빈번하게 하면서 매주 매주를 치밀하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목적이 생기면 이루고 싶은 목표를 만들고, 지난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기간을 산정한 후, 그에 필요한 리소스와 할 일을 갠트차트로 만든다. 짧은 주기로 제품을 개발하고 테스트하고 피드백을 받아 보완하는 애자일 방법론은 시간이 돈보다 더 비싼 스타트업들이 주로 선택하는 업무 방식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가 결과물로 나오기까지 2주가 넘지 않아야 실력 있는 사람이라 여겼다.
“내가 무슨 일을 맡으면 10년이 걸린다.” 68세의 보타는 자신의 말처럼 성지 작업을 하는 동안 79세가 되었다. 신부님은 65세, 춤토어는 81세, 십자가와 성화 작업을 한 93세의 반지는 올해 3월 세상을 떠났다.
이상각 신부의 이야기를 알게 됐을 때, 내 몸에 배어 있던 일하는 방식이 탁한 냄새를 풍겼다. 속도와 완성도를 어떻게 타협했는지, 그리고 숫자로서의 성과와 의미로서의 성과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말이다. 대부분 완성도보다 속도, 그리고 의미보다는 수치를 강하게 내뿜었다. 긴 호흡으로 한 목표를 바라보기보다는, 나와 회사의 주주들은 대부분 즉각적인 결과를 원했다. 프로젝트는 결국 내가 생각한 목적에 맞게 완성되지 못했다.
남양성모성지의 세월 속에서 시간은 무언가를 완성하는 중요한 축이다. 빠르게 달려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가끔은 느리게 걸어가면서 더 깊이 살피고, 더 멀리 본 결과다. 시간이 쌓이고, 그 위에 노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완성을 이룰 수 있다.
[장서정 자란다 창업자·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