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국내 방송·미디어 생태계에 더 깊게 침투하고 있다. 국내에서 제작된 콘텐츠를 더 공격적으로 수급하는 한편 국내 대표적인 플랫폼인 네이버와 공조해 가입자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토종 OTT 티빙, 웨이브의 합병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합병을 성사시킨다고 해도 넷플릭스를 꺾기는 힘들 것이라는 회의적인 전망이 나온다. 합병 후에도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고, 콘텐츠 삭제, 구독료 인상 등으로 이어지면 국내 미디어 콘텐츠 산업경쟁력이 되레 뒷걸음질 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내달 중 자사 멤버십 ‘네이버플러스’ 디지털 콘텐츠 혜택에 넷플릭스 ‘광고형 스탠다드’를 추가한다. 국내 IT기업 멤버십 중 넷플릭스 이용권을 제공하는 것은 네이버가 처음이다. 정체된 시장에서 가입자를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넷플릭스가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넷플릭스에 대항하는 토종 OTT간 결합을 위한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본계약 체결을 위한 최종 협상안 도출을 남긴 상황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들의 합병에도 사실상 독주 체제인 넷플릭스를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양사 모두 적자인 상황에서 자금력을 모아도 넷플릭스와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티빙은 1420억원, 웨이브는 803억원의 적자를 냈다. 웨이브는 누적 결손금만 4828억원에 달한다.
반면 지난해 기준 넷플릭스가 보유한 현금은 약 9조8200억원으로,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법인 가용 현금 1795억원의 50배가 넘는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1회당 제작비는 약 28억원으로, 티빙의 평균 1회당 제작비보다 두 배 가량 많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넷플릭스는 연간 34편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기존 티빙의 평균 제작비로 넷플릭스와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34편 제작한다고 가정하면, 제작비 총액이 약 4300억원 필요하지만, 합병 법인이 보유한 자금으로는 턱 없는 수준이다.
양사가 합병시 장기적으로 요금이 올라가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합병 후 지배력이 강화되면 가격 인상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넷플릭스는 지난 2021년 베이직 요금제를 9500원에서 1만1000원으로, 스탠다드는 1만2000원에서 1만3500원으로, 프리미엄은 1만4500원에서 1만7000원으로 올린 바 있다. 이는 종전보다 약 12~17% 인상된 수준이다. 디즈니플러스 또한 가입자를 확장하던 지난해 구독료를 기존 9900원에서 1만1900원으로 20.2% 올렸다.
플랫폼이 줄면 결과적으로 작품 수가 감소해 국내 미디어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지난 2022년 미국 워너미디어의 스트리밍 플랫폼 ‘HBO 맥스’와 디스커버리의 OTT ‘디스커버리플러스’ 합병 이후 ‘하우스헌터스(House Haunters)’ 등 리얼리티 TV 시리즈 같은 다수 작품이 사라졌다.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는 합병 후 되레 가입자가 줄어들고 대량의 부채를 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미디어·방송 업계에서 티빙의 최대 주주인 CJ ENM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경계 목소리도 나온다.
미디어 업계 한 관계자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은 국내 시장에서 CJ 중심의 독과점 체제를 강화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사 합병을 통해 실질적인 경쟁력이 확보될지는 의문"이라며 “양사 모두 재정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합병을 통해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