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해운대에 또 드리운 난개발 그림자

부산시의회 A 의원이 ‘도시계획조례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건 2012년 6월이다. 부산 12곳의 중심지 미관지구 89만8043㎡(27만2130여 평)에 공동주택을 허용하는 내용이 핵심. 중심지 미관지구에선 상업·업무시설을 제외한 건축물 용도와 높이가 제한된다. 고밀도 개발에 따른 경관 사유화와 조망권·일조권 분쟁을 우려해서다. 부산 중심지 미관지구는 해운대해수욕장 앞 도로(46%)와 중앙로(충무동옛 부산시청연산교차로)에 집중돼 있다.

당시 A의원의 개정안은 해운대 그랜드호텔(1만1643㎡)에 가장 큰 수혜를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랜드호텔이 2009년부터 중심지 미관지구를 주상복합이 가능한 일반 미관지구로 바꾸는 시도(지구단위계획 변경)를 했다가 퇴짜 맞은 적이 있어서다. 당장 “왜 부산시의회가 사기업 이해를 대변하느냐” “경치만 좀 낫다 싶으면 어김없이 성냥갑 아파트가 밀고 들어오는 판에 해안가 허파 노릇을 하는 미관지구까지 손을 대려는 건가”는 비판이 쏟아졌다. 부산시민단체협의회와 부산참여연대·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를 포함해 시민사회가 모두 성명을 냈다. 언론사엔 “그랜드호텔이 아파트 인·허가를 받기 위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를 고용해 로비하고 있다”는 제보가 밀려들었다. 여론이 들끓자 부산시의회는 조례 개정을 포기했다.

12년 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해운대해수욕장이 또 난개발 논란의 무대가 됐기 때문이다. 옛 그랜드호텔을 매입한 부동산 개발사 엠디엠(MDM)이 최근 부산시에 ‘해운대 그랜드호텔 개발 교통영향평가’를 접수했다. 이비스 버젯 호텔(536㎡)까지 합친 1만2000㎡에 지하 8층~지상 49층 4개 동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최대 높이가 171.7m니 바다 경관 ‘독점’ 비판이 나온다. 건축 용도 또한 주거용으로 많이 쓰이는 오피스텔(521실)이 호텔(310실)·콘도(91실)보다 많다. 투자금을 조기 회수할 수 있는 공동주택 대신 오피스텔이라는 편법을 동원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해운대해수욕장 일대에는 고층 생활형 숙박시설과 오피스텔이 점령해 공급 과잉을 우려해야 할 정도다.

엠디엠이 내세운 청사진은 “최고급 호텔과 부대시설을 중심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복합리조트”이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든 까닭은 학습효과가 있어서다. 부산시민은 ‘해운대관광리조트’로 포장된 엘시티가 초고층 주거단지로 전락하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다. 엘시티 개발비리 수사 과정에서 자칭 ‘전문가’라 불리는 인사들이 대놓고 특혜를 주려 한 정황이 드러나 행정 불신을 키우기도 했다. 엘시티는 지금도 토목건축 자본의 탐욕과 동의어다.

부산시와 해운대구청이 그랜드호텔 개발에 어떤 입장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쉽게 인·허가를 내주는 것이다.

설사 여론 반대에 부딪혀 한번 부결된다고 끝이 아니다. 부산시민은 개발업자가 다양한 명분을 만들어 끈질기게 요구하면 마침내 실현되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 원래 엘시티 입지도 중심지 미관지구였다. 부산시는 2009년 ‘관광활성화’를 위해 특혜 시비를 무릅 쓰고 주거가 가능한 일반 미관지구로 용도를 바꿔줬다. 지금 엘시티에 제대로 된 관광시설이 있나. 오히려 초고층 그늘이 반경 1~2㎞를 덮어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해운대는 빌딩풍도 일상화됐다. 부산대 권순철 교수팀이 수행한 연구에서 엘시티 주변 풍속은 내륙과 비교해 최대 4배 이상 강했다. 태풍 ‘힌남노’와 ‘난마돌’이 상륙했을 때 엘시티 앞에서 순간 최대풍속 초속 80.44m가 관측됐다. 초속 50m 이상이면 지나가는 차가 뒤집힐 수 있는 강도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질 때면 엘시티 유리창이 깨진 게 한 두번이 아니다. 해운대 집중에 따른 교통 정체는 이제 일상이다. 오죽하면 부산시가 막대한 민간자본을 유치해 지하고속도로(대심도·센텀~만덕)까지 뚫겠는가.

국내 최대 휴양지인 해운대해수욕장은 모두의 공간이다. 그동안 부산시민은 공공재를 사유화하려는 욕망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했다. 축구전용구장을 짓는다는 명분으로 구덕운동장에 아파트를 허가하려 한 부산시 욕망과 아이에스동서의 이기대 고층아파트 사업이 좌초한 게 대표적이다. 그랜드호텔 재개발은 또 다른 시험대다. 민간사업자 요구가 관철된다면 “형평성”을 이유로 유사 민원이 빗발칠 우려가 크다. 그때는 무슨 명목으로 거부할 건가.

자본의 욕망은 끝이 없다. 20·21대 국회에서 ‘엘시티 방지법’이 발의 또는 통과됐으나 민간사업자는 늘 그 틈새를 노린다. 난개발 대명사인 엘시티 망령은 지금도 어디선가 자라고 있다.

그랜드호텔은 지금도 중심지 미관지구다. 행정기관의 건축·경관 심의를 거쳐야 한다. 부산시와 해운대구청은 엘시티에서 교훈을 얻었을까.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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