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차이를 인정한 차별화 정책이 지방 살린다

키가 큰 성인과 작은 어린이가 있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 앞에 1.5m 높이의 장벽이 있다면 성인은 가만히 서서도 장벽 뒤를 볼 수 있지만, 아이의 눈앞에는 그저 벽만 보일 것이다. 의사가 서로 다른 환자에게 일률적인 약 처방을 내린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렇다. 진정한 지방시대의 실현을 위해서는 다름과 차이를 인정·이해하고 이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을 써야 한다.

한때 대한민국 수출에서 두 자릿수 비중을 차지했던 내륙 최대 수출기지인 경북 구미는 2009년까지 전국 200여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수출 1위를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2021년 충남 아산의 수출은 754억 달러로 구미의 3배를 훨씬 웃돌았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화성, 충북 청주에도 추월당했다.

「 수도권은 비대, 지방은 소멸 위기 지방기업 세금 감면 등 지원 필요 정부가 희망의 불씨를 살려가야 」

10여년 전 평균 연령이 30세 정도였던 구미는 현재 41.7세를 기록할 만큼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왜 이렇게 수도권과 지방의 환경이 달라지고 있을까. 고도 성장기였던 1970~8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일만 하고, 희생이 통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가 극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일과 생활의 균형, 즉 워라밸을 중시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젊은층은 특히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수도권 인구는 1970년 이후 최근까지 비이상적이라고 할 만큼 급속도로 증가했다. 2020년 수도권 인구가 전국의 과반을 처음 돌파했다. 1979년 입주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지금 100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 따라따라, 너도나도, 위로위로 모여들며 인프라와 교통, 금융과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됐으니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의료와 교육, 쇼핑과 문화는 덤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수출기지인 구미는 KTX도 멀리 떨어진 김천에 위치한 김천(구미)역을 이용해 불편하지만, 수도권에는 거미줄 지하철망에 이어 촘촘한 GTX까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반면 지방에는 사람이 없고 대학은 벚꽃 피는 순으로 쇠퇴해가고 있다.

그런데도 지방에는 원전·댐·폐기물처리장 등 많은 국가 핵심기반시설이 건설되어 있고,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의 원천은 대부분 지방에 있다. K방산 기지는 구미와 창원을 필두로 형성돼 있고, 구미는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됐다. 지방이 처한 어려움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정답은 차이를 이해한 차별화된 정책뿐이다. 국내 첨단기업의 분포를 보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기업은 대부분이 수도권 일대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연구개발(R&D) 기반이 턱없이 약하고 정주 여건이 불리한 구미 등 지방은 어떻게 첨단업종과 인재를 확보할 수 있겠는가. 차별화 정책이 절실한 이유다.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사람에게 계속 음식을 주는 것이 맞는가. 한쪽에서는 과식으로 더 많은 성인병을 얻는데, 다른 쪽에서는 음식이 부족해 고통을 받는 불균형이 벌어진다. 이런 와중에 제조업의 입주를 허용하는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은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 전체적 공생의 판을 새로 짜야 할 때다.

지방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는 물론 상속·증여세를, 지방에서 일하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소득세를 낮춰주거나 소득공제를 확대해줘야 한다. 신·증설 투자가 활발히 일어나는 구미 같은 지방 공단에는 지방투자촉진보조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대책도 절실하다. 법인세의 지방 차등제, 지방공단 전기료 인하,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주하는 우수 인력에 대한 전폭적 지원, 유연한 근로 환경 제공 및 산단의 입주 업종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아이를 낳는 사람에게 출산 지원금 등 여러 혜택을 주듯이 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지방 도시에는 ‘진정한 지방시대 인센티브’ 카드를 줘야 한다. 구미는 지금 첨단 반도체 소재·부품 콤플렉스, 방산 기지, 기회발전 특구 지정으로 재도약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러한 국책 사업이 성공하려면 특구 지정에 그치지 말고 계속 뻗어 나갈 길을 열어줘야 한다. 중앙 정부가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화된 정책을 펼쳐주지 않는다면 이 작은 불씨는 잠깐 연기만 피우다 결국에는 꺼져버릴 것이다. 더 늦기 전에 행동하길 간절히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재호 경북상공회의소장·주광정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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