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한동훈의 헤어질 결심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과 정말로 헤어질 결심을 했나 보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의 ‘역린’인 김건희 여사 문제를 건드리며 공개활동 자제와 도이치모터스 사건 사법처리를 연이어 거론하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관련된 사안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해 왔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게 한 대표일 터다. 이미 지난 1월 ‘명품가방 수수’를 놓고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말했다가 용산으로부터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받는 일도 겪었다. 그런데 이번엔 대통령실이 공식적인 반응을 내지 않았다. 한 대표는 내친김에 한발 더 나아가 “김 여사 라인이 존재해선 안 된다”며 김 여사 주변 인사들 정리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고위 관계자’ 입을 통해 “대통령실엔 오직 대통령 라인만 있을 뿐”이라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한 대표와의 회동을 취소하진 않았다.

지난 1월과 달라진 게 있다면 총선을 거쳐 여소야대 지형이 더욱 뚜렷해졌고, 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는 점이다. 더욱이 김 여사를 겨눈 야당의 공격은 태풍의 영향권에 든 파도처럼 거세게 여권을 때리는 중이다. 한국갤럽의 윤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직무수행 부정 평가의 이유로 ‘김 여사 문제’를 꼽은 응답은 9월 첫째주 1%에서 10월 셋째주 14%까지 치솟았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세를 몰아‘김건희 특검법’을 다시 발의하며 11월 총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이제 급한 쪽은 대통령실이 됐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처지가 바뀐 것이다.

한 대표는 지금이 용산의 그늘에서 벗어날 적기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그는 지난 7월 당대표에 오른 이후 대통령 국정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동조화 현상’에 발목 잡혀 왔다. 그 이전 당정 갈등 국면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 때 당 지지율은 반등하는 ‘탈동조화’가 나타났던 것과 대비되는 것이다. 한 대표 체제가 안착하기 전에 당정 충돌 장면이 반복되고, 정책 측면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자 그의 정치력에 대한 의구심도 고개를 들었다.

이에 더해 난데없는 명태균씨 등장으로 김 여사 의혹이 증폭되자 더 늦기 전에 액션을 취해야겠다고 결심했을 수 있다.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윤 대통령이 평가했던 한 대표가 이제 윤 대통령을 상대로 독립운동 하듯 정치 투쟁에 나선 것이다. 결국 한 대표가 10·16 재보궐 선거 이튿날 용산을 향해 내놓은 3대 요구안은 쇄신을 기치로 당정 관계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선언이자, ‘이제 내 갈 길을 가겠다’는 통보라 할 수 있다.

한 대표가 대권을 꿈꾸는 한 숙명적으로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야 할 시점을 맞게 돼 있다. 지금처럼 대통령 지지율이 기신기신한다면 정권 계승보다는 뚜렷한 차별화에서 길을 찾는 게 수순이다. 그리고 그 시점을 앞당기게 한 촉매제가 김 여사인 것이다.

한 대표 앞에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는 건 분명하다. 정치 권력의 정점인 윤 대통령은 5년 임기의 반환점도 돌지 않은 상태고, 한 대표의 당내 정치적 기반은 여전히 약하다. 한 대표 행보에 대한 대통령실과 당내의 비판과 견제도 본격화되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회동이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지만, 불신과 마음의 앙금 위에서 실제적인 결과물을 내기는 애초 쉽지 않았다. 윤·한 갈등의 시작점인 김 여사 문제는 지금도 갈등의 중심이자 다가올 윤 대통령 임기 후반기를 결정할 분수령이다. 한 대표가 가장 넘기 어려운 벽이기도 하다. 그 뒤에 있는 건 질서 있는 결별일까, 불편한 동거일까, 파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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