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방울 예술혼 잇는 제자들, 中 쿤밍에 ‘아리랑’ 새기다

“어이! 좋았어!”

우리 국악이 중국 관객의 귀를 번쩍 깨우는 비결은 신명난 울림이었다. 농악패 놀이꾼들의 기운찬 호령 사이로 순백의 상모 끈이 너풀거리고, 무용수들의 부채 끝에선 화려한 기품이 넘치는 무궁화가 피어났다. 낯선 이국의 소리에 긴장했던 객석 표정은 금세 놀라움과 환희로 변모했다.

임방울국악제 역대 수상자 20명은 18일 오후 7시 중국 윈난성 쿤밍시 쿤밍문화예술중심 공연장 200여 명의 현지 시민과 교민 관객 앞에 섰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민중의 설움을 판소리 가락으로 어루만졌던 국창(國唱) 임방울(1905~1961) 선생을 기리는 국악제가 2010년부터 해온 해외 공연이다. 팬데믹 시국으로 인한 기간을 제외하고 열두 번째 무대에 올랐다.

중국 남부 윈난성의 성도인 쿤밍에는 중국 한족 포함 56개 민족 중 26개 민족 846만명이 살고 있다. 이 중 한족과 이족이 가장 많고, 조선족은 소수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약 4시간 비행 거리라 중국 타 지역과 비교할 때 한국인 관광객도 많지 않다.

그만큼 우리 소리에 낯선 이 지역에서 올해 임방울국악제 수상자들은 광주광역시 후원과 임방울국악진흥회 자체 예산으로 무대를 펼쳤다. 예년 해외 공연들이 그간 방문 지역 정부와 기관의 초청 행사로 열려왔던 것과는 다른 경로를 택한 것이다. 김중채 임방울국악진흥회 이사장은 “자체 진행을 하다 보니 예년보다 관객도 줄고, 출입국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며 “그럼에도 인구수만 14억이 넘는 거대한 중국에 우리 음악의 뿌리를 명확히 알리고, 문화 교류의 토대를 쌓는 동시에 현지 교민의 향수를 달래는 것이 한국 국악계를 대표하는 임방울국악제 수상자들의 막중한 의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객의 면면도 예년과는 남달랐다. 과거 현지 정치인, 문화계 주요 인사들이 주로 앉았던 무대 바로 앞자리를 올해는 우리 국악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일반 시민들이 채운 것. 한국농악보존회 농악단(현호군 외 5명)이 장구·북·꽹과리·징이 함께하는 ‘풍물판굿’으로 공연 문을 활짝 열자 객석에선 남녀노소 모두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객석의 흥이 충분히 달궈진 걸 확인한 농악 단원들은 즉석에서 중국 현지 어린이 관객을 무대로 불러냈다. 두 뼘가량 길이 막대기를 손에 쥐고 어린이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버나(대접) 돌리기’를 펼쳐 큰 환호성을 뽑아냈다.

무용수들(박소희 외 6명)의 고운 한복 자태에는 탄성이 쏟아졌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태평무와 부채춤, 박진감 넘치는 소고춤이 펼쳐지자 관객들은 “우와~” 소리와 함께 연신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마미숙, 원진주, 박자희, 정은혜 등 역대 임방울국악제 대통령상(대상) 수상자들이 심청가, 흥부가 등 판소리의 유명 대목과 농부가, 풍년가, 진도아리랑 등 남도민요를 부를 땐 가사 뜻을 모르면서도 일부 관객들이 “얼쑤!” 하며 고수인 조가완 명인의 추임새 소리를 따라했다. 김승호(대금), 김정민(아쟁), 이정아(가야금), 조가완 명인이 펼친 기악합주도 중국 악기와는 색다른 선율로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이정아 명인이 가야금병창으로 방아타령과 중국 민요, 아리랑을 연달아 편곡해 선보였을 땐 객석에서 중국어와 흥얼거림이 뒤섞인 떼창이 이어졌다.

공연 후 현장에서 만난 조선족 관객 박태섭(30)씨는 “증조부모가 한국에서 왔다. 조선족도 어릴 때부터 아리랑을 듣고 자란다. 평소 중국에서 한국 문화를 직접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웠는데, 익숙한 아리랑 소리를 이렇게 훌륭한 소리로 들을 수 있어 너무나 반가웠고, 울컥했다”고 했다. 쿤밍시에 사는 판셩(潘胜·20)씨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국과 중국 간에 문화 교류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뜻 깊은 일”이라며 “한국 고유의 전통 음악이 독특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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