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누가 법률이 위헌임을 선언하는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나. 사법부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위헌 여부를 심판할 수 있는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니까 개인이 위헌이라고 판단해도 되는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국회가 제정한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권한은 헌법재판소에 있다. 헌재가 심사하여 위헌으로 결정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위헌성이 짙다고 해도 그 법률은 효력이 있고 지켜져야 한다. 법원도 재판 중 해당 사건에 적용할 법률의 위헌 여부가 문제될 때, 재판부가 위헌이라고 판단할 수 없고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할 수 있을 뿐이다. 위헌 심판권을 헌재가 갖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안다. 헌재가 설립된 지 30년이 훌쩍 넘었으니 모를 리 없다. 대통령, 법원, 국민은 위헌적 법률이라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지언정 그 법률이 위헌이라고 선언할 힘을 갖지 않는다.
[Read More][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심학산으로 초대한 버니지아 울프
근래 이래저래 읽은 글 중에는 시나 소설, 울화통 터지는 기사, 가끔 흥얼거린 가사도 있지만 젖은 낙엽처럼 나의 심층에 오래 묵혀 있던 어떤 완고한 생각의 딱지를 긁어낼 만큼 폐부를 깊숙하게 찌른 산문이 있다. 오랜 동안, 시간을 잃어버리며 나는 사람의 상태를 유지해 왔다. 무려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몸은 반투과성의 특수한 막에 둘러싸여 그 신진대사를 영위하는 중이다.
나무 공부하러 산에도 제법 다닌다. 산이 좋아 산에 가지만 나는 자연과의 분리, 사물들과의 구별을 철저하게 해왔다. 모름지기 내 위주로 생각을 해왔고 뱀이나 벌레 하나 속옷으로 뛰어들까 겁을 먹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키는 깔딱고개의 눈으로 나를 보자면 참 이기적인 놈이라 여길 게 틀림없겠다.
[Read More][에디터의 창]‘5만전자’와 십상시, 그리고 뉴삼성의 딜레마
2009년 늦가을 마침내 애플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해 삼성의 혼쭐을 빼놨다. 2010년엔 지펠 냉장고가 돌연 폭발해 사상 최대 21만대 리콜에 나섰다. 그즈음 반도체공장 산재를 다룬 ‘반올림’ 갈등도 불거졌다. 2년여 만에 다시 삼성을 맡았을 때는 불산가스 누출로 하청노동자가 숨졌다. 또 2년여 만에 돌아온 2016년엔 갤럭시노트7 폭발까지….
모두 삼성 출입기자로서 겪은 일들이다. 돌이켜보니 삼성이랑 참 ‘연’이 질기다. 사실 삼성에 ‘위기’ 아니었던 적이 없다.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성패를 갈랐을 뿐.
이건희 회장 생전인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연말에 사면복권을 단행했다. 곧 ‘떡값검사’ 뇌물공여 X파일 사건 등으로 물러난 이 회장의 경영복귀 신호였다. 시민사회의 비판이 들끓었다. 다만 난 좀 다른 판단을 내렸다. 그의 복귀는 일면 타당하다는 메시지를 냉정히 담았다. 이유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아니다. 바로 아이폰 3GS다.
[Read More][녹색세상]내 모든 것들의 탄소발자국
비닐봉지를 한 장 덜 쓰거나 텀블러를 사용한다고 환경적인 효과가 있을까. 기후가 이상한데 뭐라도 해야지, 시도한 순간 주변의 회의주의자들이 이렇게 묻는다. 비슷하게 “재사용한다고 쓰는 물이랑 세제 따지면 그게 오히려 환경에 더 나쁘대”라는 실용주의 버전이 있다.
몸무게를 빼려면 현재 내 몸무게는 물론 섭취 음식이나 운동별 열량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배출량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숫자는 힘이 세다. 1㎏ 차이가 엄연히 다르다. 고로 몸무게 다이어트에 체중계가 필요하듯 탄소 다이어트엔 저울이 필요하다. 나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비닐봉지 무게도 잴 수 있는 미세 저울을 하나 마련했다.
[Read More][요리에 과학 한 스푼]생선을 우유에 담그는 이유
우연히 한 외국인이 요리를 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선스튜를 만들고 있었는데, 생선을 다듬는 방식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생선을 우유에 잠시 담가두고 있었죠.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식초 등을 뿌려 중화시키거나 밀가루를 묻혀 비린내를 빨아들이는 우리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유는 어떤 원리로 비린내를 제거하는 것일까요?
우유의 대부분은 물입니다. 여기에 소량의 지방과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죠. 그런데 우유의 지방은 인지질이라 불리는 물질이 둘러싸고 있어 물속에서도 작은 덩어리 형태로 잘 분산되어 있습니다. 인지질은 물과도 친하고 지방과도 친한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인지질이 없다면 우유는 금세 물과 지방으로 나뉘어버릴 것입니다.
[Read More][고병권의 묵묵]내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죽어야 한다면/ 그대는 반드시 살아/ 내 이야기를 전하게/ 내 물건들을 팔아/ 한 조각의 천과 한 뭉치의 실을 사게,/ (그걸로 꼬리 긴 하얀 연을 만들게)/ 가자의 어딘가에 있을 아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섬광 속에서 떠나버린 아빠를/ 아무에게도 작별을 고하지 못한 채/ 제 몸뚱이에도/ 제 자신에게도 작별을 고하지 못한 채 떠나버린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하늘에 떠 있는 연을, 그대가 만든 나의 연을 볼 수 있게/ 잠시나마 아이가 저기 천사가 있다고/ 사랑을 가져다줄 천사가 왔다고 생각하게 해주게/ 내가 죽어야 한다면,/ 희망이 되도록 해주게/ 이야기가 되도록 해주게.”
[Read More][사유와 성찰]전쟁 신학에 포위된 이스라엘
전쟁은 물질이 인간의 정신을 소멸시키는 행위다. 아무리 찬란한 철학·문학·역사인들 폭탄 하나로 사라진다. 전쟁에서 인도적 대우에 관한 국제협약인 제네바협약도 종잇장에 불과하다. 국가는 형법으로 개인의 복수를 금지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국가나 단체의 복수를 금지시킬 힘이 없다. 이·팔전쟁은 이러한 약육강식의 현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대한 보복뿐만 아니라 이제는 헤즈볼라와 레바논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유엔평화유지군 공격도 불사하며 폭주하고 있다. 그 선두에 서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언설에는 전쟁의 광기가 서려있다. 신정국가 건설을 위해 무소불위의 패권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지중해와 유럽을 제패한 로마제국의 멸망처럼 힘으로는 결코 영구적인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교훈을 그는 잊어버린 것 같다. 이스라엘은 증오와 말살의 전쟁 신학에 기대어 자신들이 당한 홀로코스트를 재현하고 있다.
[Read More][루페로 보는 시선]소리 없이 흩어지는 이름들
오키나와 도미구스쿠 언덕에 오르면 오키나와 구해군사령부(旧海軍司令部壕)가 있다. 이 건물은 일본군이 지은 반원형의 지하 벙커로, 오키나와 전투의 거점이었던 장소다. 폭이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30m 아래에 좁고 낮은 방들을 볼 수 있다. 벙커 내부에는 패전을 직감한 해군 장교들이 수류탄을 이용해 집단 자살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들의 죽음은 누구의 선택이었을까.
오키나와 민간인들 또한 일본군에게 강제, 반강제로 죽임을 당했다. 일본군은 민간인을 차출해 전투에 투입시켰고 숨어 있던 주민들의 은신처와 식량을 빼앗았다. 미군의 포로가 되면 끔찍한 일을 당한다는 일본군의 거짓소문에 속은 수많은 오키나와인들이 가족과 함께 자결을 선택했다.
[Read More][김경식의 이세계 ESG]‘데·논·타’가 세상을 바꾼다
데·논·타? 데이터와 논리와 타이밍의 준말이다. 기업이든 정당이든 국가 기구든 모든 조직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근거한 논리로 타이밍 있게 추진을 해야 한다. 데이터는 숫자가 아니다. 데이터는 특정 목적을 위해 수집된 다양한 정보의 집합이다. 숫자의 데이터화 과정은 죽은 것을 살려내고, 버려진 것을 회수하고, 의미 없던 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과정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논리적 싸움(논쟁)은 그 자체가 사회적 공감대 형성 과정이다. 따라서 데이터에 기반한 논쟁은 치열할수록 좋다. 이러한 논쟁을 통해 여론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수렴되고 정책의 실효성은 높아진다. 설사 정책이 실패하더라도 빠른 대처가 가능해서 회복도 빨리할 수 있다. 현실의 불합리한 점은 분노로 표출되지만 이의 제도적 개선은 반드시 데·논·타가 따라야 한다.
[Read More][시사난장] 10월, 그 묵직한 역사의 수레바퀴
‘억눌린 우리 역사 / 터져 나온 분노 / 매운 연기 칼바람에도 / 함성소리 드높았던 / 동 트는 새벽벌 / 시월이 오면 / 핏발 선 가슴마다 / 살아오는 십일 육 / 동지여 전진하자 / 깨치고 나가자 / 뜨거운 가슴으로 / 빛나는 내일로.’
지난 16일은 부마 민주항쟁 기념일이었다. 이 글은 당시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부산대 10·16 기념비에 적혀있는 문구다. 글자 행간 사이사이로 느껴지는 그날, 그 시대에 대한 청년 학생의 울분과 결기가 오롯이 되살아 마치 지금 우리에게 전해져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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