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소가 우는 마을

소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소스라치듯 몸을 일으켰다. 사이렌처럼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매 하는 평범한 울음이 아니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명이었지만 듣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온몸이 부서지라 외치는 피맺힌 절규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수백 마리가 하나 되어 죽을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듣고만 있어도 내 몸이 절망으로 울리는 듯했다. 뺨이라도 맞은 듯 볼이 얼얼했다. 불이라도 났나 싶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마을 전체가 절망으로 진동하고 있었다. 산과 들이 말없이 푸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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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칼럼]통일은 평화의 반대말이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나기 무섭게 38선으로 분단된 뒤 남북은 각자의 근대 국민국가를 세웠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국민’이 될 기회도, 유일한 통치기구가 일정한 영토를 통제하며 물질적 복리를 제공하는 단일 ‘국가’의 경험도 남북 주민들은 갖지 못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언어와 출판문화를 공유함으로써 국민의 집단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봤지만, 분단 이후 남북 주민들은 같은 신문·잡지와 방송을 접할 수 없었다. 같은 한글을 쓰되, 그에 담긴 사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국전쟁 3년간 경남 일부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역에서 전쟁으로 가족, 이웃, 친척을 잃지 않은 한국인은 없다시피 했다. 북한은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남북의 적대성은 극단화됐고, 한쪽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으면 통일이 불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통일은 평화의 반대말이 됐다. 이 엄연한 사실을 모른 체하며 남북은 수시로 ‘통일론’을 띄웠다. 전후 한국보다 앞서 경제성장을 달성한 북한이 먼저 통일 공세를 펼쳤으나 1980년대를 거치며 한국이 역공에 나섰다. 통일 공세의 본질은 ‘힘자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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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아파트공화국, 카페천국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사건이 있다. 강남의 모 아파트 단지에 마치 학교 교가 같은 느낌의 아파트 찬양 시를 새긴 비석이 알려진 것이다. 우리의 궁궐, 천 년의 보금자리, 이상향, 영원한 파라다이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함께 과거 절대권력에 부역했던 문인들이 떠오른다. 낯뜨거운 표현에 처음엔 웃었지만 생각할수록 기이하다. 그들은 아파트공화국인 이 나라의 시민이기를 거부하고 그들만의 왕국을 짓고 살아서 천국을 누리나 보다.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카페천국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대형 카페가 경쟁적으로 들어서고 있다. 대부분이 북한산 뷰를 품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경관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 하나 있다. 그래도 동네 주민으로서 한 번은 들러야 하지 않겠나 핑계를 대며 아내와 함께 가보았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주차 안내를 하시는 분이 우리 차로 오더니 차 안을 살펴보고 승차 인원 숫자를 적은 종이를 준다. 1인 1음료 주문을 체크하는 시스템이다. 시작부터 감시받는 느낌에 기분이 좋지 않다. 내심 평일이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다정한 연인들과 삼삼오오 남녀노소 손님은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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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오늘]한강의 ‘다음’을 기다리는 이유

그날 저녁,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을 고집하는 한 배우의 삶을 그린 연극을 보고 있었다. 섬세한 연기, 묵직한 울림, 모든 게 좋았다. 오후 9시30분, 객석을 빠져나오며 스마트폰 전원을 켜자 적잖은 수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수신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문자에는 ‘한강’ ‘노벨 문학상’이란 단어가 선명했다. <더 드레서>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새로운 전율은, 돌고 돌아가는 귀갓길마저 흥겹게 했다. 혼자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축배를 들이켠 나는, 일의 특성상 대부분 ‘초판 1쇄’일 수밖에 없는 한강의 작품들을 찾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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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영의 경제읽기]중국 부양책을 바라보는 시각

코로나19 사태라는 경제 암흑기를 지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역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보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강한 봉쇄를 진행하였고, 그로 인해 중국 경기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과거부터 중국은 경기가 부진한 시기에 대규모 부채를 일으키며 부동산 개발 사업을 지원, 난국을 극복해왔다. 그러나 주거용 부동산 버블 및 지방 정부의 과도한 부채 확대에 대한 경계감이 크게 확산되며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기 부진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부양 스탠스로 일관해왔다. 과거 일본은 급격한 부동산 버블 및 부채의 팽창을 용인했다가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겪었던 바 있는데, 중국 역시 일본과 같은 행보를 이어가는 데 대한 우려가 상당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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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흑백요리사’가 보여주지 않는 ‘K푸드’의 혼종성

넷플릭스 <흑백요리사>가 많은 관심 속에 종료되었다. 캐나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교포이자 이주와 젠더를 연구하며 글로벌한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대해 고민하는 학자인 내게 이 프로그램은 ‘한국 요리사’와 ‘한식’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출연한 요리사 구성은 매우 다양했다. 한국 식재료를 사랑한다는 파브리나 조셉은 ‘외국인 요리사’라고 널리 알려진 스타셰프다. 하지만 글로벌 스타셰프 에드워드 리는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마음속은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어로 대답했다. 한국에서 출생했고 대만 국적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뒀다고 알려진 여경래는 대만 국적 소지자라도 외국인이라고만 말하기엔 미안하다. 아버지가 한국 국적자여만 한국 국적이 부여되는 부계혈통주의에 기반한 종전 국적법이 그가 출생한 지 수십 년 지난 1998년 양계혈통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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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고독(蠱毒)이라는 저주

외롭다는 뜻의 ‘고독’이 아니다. 배 속 벌레 고 자와 독약이라고 할 때의 독 자를 합쳐 ‘고독’이라고 불리는 저주다. 글자 생김으로 뜻을 따져보면 고(蠱) 자는 그릇(皿)에 담긴 벌레를 의미하니, 고독은 이를 이용한 저주를 뜻한다.

저주의 방법은 이러하다. 항아리 안에 여러 종류의 독충이나 파충류를 한데 모아 봉한 다음 그 안에서 서로를 잡아먹게 한다. 다음 해에 개봉을 했을 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한 마리를 태워 가루로 만든다. 이 가루를 저주하고 싶은 사람의 음식이나 술에 넣으면, 그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혹은 이 항아리에서 혼자 살아남은 생물을 ‘고’라 하는데, 신을 섬기듯이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음식에 독을 방출한다고도 한다. 고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동물은 매우 다양했다. 뱀을 써서 만들면 사고, 고양이를 쓰면 묘고, 개를 쓰면 견고라고 했다. 중국 고대부터 전해진 이 고독은 조선시대에는 사면령 대상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잔혹한 저주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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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요리하는 영장류

코로나19 감염 후, 답답한 자가격리를 끝내고 외출이 가능해졌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건 공원이었다. 아직 초봄이라 공기는 차가웠지만, 바깥 바람이 그리웠기 때문이었다. 짧은 산책의 마무리로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제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한 모금 머금은 따뜻한 액체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색과 제형은 커피가 분명한데, 혀는 커피를 인식하지 못했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인 미각 상실의 결과였다.

혀에 존재하는 미각 수용체는 평소에도 2~8주를 주기로 교체되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투로 사라진 미각은 두어 달 후에는 다시 이전과 비슷해졌다. 하지만 그 두 달 동안 맛에 대해 매우 새로운 경험을 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미각의 회복 속도가 맛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회복된 미각은 신맛이었고, 그다음이 짠맛이었으며, 가장 늦게 돌아온 건 단맛이었고, 쓴맛은 들쭉날쭉했다. 약을 혀에서 녹여도 쓴맛이 안 느껴지는데, 상추는 써서 먹을 수 없었다. 미각이 돌아오는 과정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커피를 즐길 수 없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뜨거운 물과 같은 느낌이었던 아메리카노가 얼마 후엔 시큼한 맛의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했다. 그때 알았다. 쓰고 뜨거운 물은 먹을 수 있어도, 시고 뜨거운 물은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미각 상실로 인한 또 다른 이상한 경험은 단것에 대한 집착이었다. 눈으로는 설탕과 시럽과 크림의 단맛을 상상할 수 있지만, 막상 혀가 그 맛을 느끼지 못하니 뇌는 충족되지 않은 단맛에 집요해졌다. 단맛의 자극이 심해 입안이 얼얼하게 느껴질 때까지 단것을 먹어본 것은 아주 어린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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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부산판 제노사이드

1948년 유엔은 ‘집단 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을 채택해 1951년 시행한다. 제노사이드(Genocide)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서다. 민족·인종을 뜻하는 제노스(genos)와 죽임을 의미하는 사이드(cide)의 합성어인 제노사이드는 폴란드계 유대인 변호사 라파엘 렘킨이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다. 1945년 11월 시작된 뉘른베르크 군사법정은 나치 전범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기소했다.

국제사회가 제노사이드 범죄를 단죄할 때 한반도에선 공권력에 의한 제노사이드가 자행됐다.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하에서 3만 명이 희생된 제주 4·3사건이 대표적이다. 노벨문학상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4·3 생존자 트라우마를 다룬다. 주인공 강정심은 평생 4·3을 입밖에 꺼내지 않는다. ‘빨갱이’ 낙인이 두려워서다.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린 강정심은 식탁 밑에 숨어 딸에게 말한다. “구해줍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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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제도의 힘은 센데…

‘노인과 바다’. 부산을 두고 우스갯소리로나 하던 표현이 어느새 부산 대표 수식어로 자리 잡았다. 부산이 경공업 발전을 주도하며 우리나라 ‘산업수도’ 역할을 하던 1960년대 전후, 이곳으로 대거 유입돼 정착한 베이비부머 세대는 이제 은퇴해 ‘초고령화 사회 부산’의 주역이 되어 버렸다.

한국 수출의 30% 가까이나 책임지던 잘 나가던 부산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진 건 1970~1980년대 강력한 성장 억제책 영향이 컸다. 정부는 1972년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자 부산을 서울과 함께 대도시 내 공장 신·증설 등을 위한 부동산 등기 시 취·등록세를 5배 중과하는 대상으로 지정했다. 1982년에는 아예 ‘성장억제관리도시’로 못 박아 있던 기업도 재배치 명목으로 인근 도시로 빠져나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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