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화유산 정책을 비판할 때 흔히 동원하는 말이 ‘박제’란 단어다. ‘박제’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동물의 가죽을 곱게 벗기고 썩지 아니하도록 한 뒤에 솜이나 대팻밥 따위를 넣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물건”을 뜻한다. ‘문화유산이 박제품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모양만 그럴듯하지 실제로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할 수 없어서 생명력이 없다는 뜻이리라.
숭례문의 역사를 살펴보면, 태조 7년(1398) “도성 남문이 완성되어 임금이 가서 보았다”는 기록이 ‘태조실록’에 있다. 또, 세종 29년(1447) ‘세종실록’에 의하면, “숭례문을 새로 지었다(新作 崇禮門)”고 했다. 세종은 숭례문의 산세가 낮은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산세를 높일 것을 명했기에 숭례문을 해체한 후 기존 기초 위에 석재를 덧대어 기초를 높이고 땅을 북돋운 다음 숭례문을 다시 세웠다. 이후, 성종 10년(1479) 숭례문을 크게 고쳤으며, 고종 5년(1868)에는 경복궁 중건 중 숭례문도 함께 수리했다는 기록이 각각 ‘숭례문 상량문’과 ‘고종실록’에 있다. 기록에는 없지만 이외에도 500년이 넘는 세월 속에 크고 작은 수리가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이후 일제의 영향력 아래, 1907년 일본 황태자의 방문에 맞추어 성벽이 해체되었다.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수리가 1961∼1963년에 있었고,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수리가 있었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