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서영아]이시바 일본 총리와의 추억

2017년 5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일본에서는 약간의 소동이 있었다. 산케이신문이 발언 경위를 이시바에게 캐물었고 그는 “‘사죄’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서로가 납득할 때까지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얼버무렸다. “그렇다면 동아일보에 항의하라”는 산케이신문의 요구에는 “그럴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이 옥신각신은 자기들끼리 이뤄졌고, 필자는 뒤늦게 지면을 통해 이를 읽었다. 다만 기사대로 해석하면 동아일보가 ‘오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인간 존엄 훼손, 해선 안 되고 죄송한 일”

다행히 필자에겐 56분 분량의 인터뷰 녹음 파일이 남아 있다. 이번에 다시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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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건축 문화유산 보존에 대하여

우리나라 문화유산 정책을 비판할 때 흔히 동원하는 말이 ‘박제’란 단어다. ‘박제’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동물의 가죽을 곱게 벗기고 썩지 아니하도록 한 뒤에 솜이나 대팻밥 따위를 넣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만듦. 또는 그렇게 만든 물건”을 뜻한다. ‘문화유산이 박제품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것은 모양만 그럴듯하지 실제로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할 수 없어서 생명력이 없다는 뜻이리라.

숭례문의 역사를 살펴보면, 태조 7년(1398) “도성 남문이 완성되어 임금이 가서 보았다”는 기록이 ‘태조실록’에 있다. 또, 세종 29년(1447) ‘세종실록’에 의하면, “숭례문을 새로 지었다(新作 崇禮門)”고 했다. 세종은 숭례문의 산세가 낮은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산세를 높일 것을 명했기에 숭례문을 해체한 후 기존 기초 위에 석재를 덧대어 기초를 높이고 땅을 북돋운 다음 숭례문을 다시 세웠다. 이후, 성종 10년(1479) 숭례문을 크게 고쳤으며, 고종 5년(1868)에는 경복궁 중건 중 숭례문도 함께 수리했다는 기록이 각각 ‘숭례문 상량문’과 ‘고종실록’에 있다. 기록에는 없지만 이외에도 500년이 넘는 세월 속에 크고 작은 수리가 여러 번 있었을 것이다. 이후 일제의 영향력 아래, 1907년 일본 황태자의 방문에 맞추어 성벽이 해체되었다. 해방 후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수리가 1961∼1963년에 있었고,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수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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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함께 떠나요! 세계지리 여행]우리나라엔 국정원, 미국엔 CIA… 정보기관의 세계

피해자는 주로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 소속 대원이었는데, 사건의 배후에는 헤즈볼라와 대치 중인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지난 15년 동안 치밀하게 계획해 헤즈볼라 대원들에게 무선호출기를 보급했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소형 폭약이 심어져 있었는데 특정 메시지를 수신하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이 일어나게 설계돼 있었습니다.

사건 직후 일상에서 이용하는 통신장비를 무기로 활용한 것에 대한 비판이 각국에서 제기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은 정도와 활동 범위에 차이가 있을 뿐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는 정보기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계지리 이야기는 세계 각국이 운영 중인 여러 정보기관에 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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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전단 무인기, 남북 공동 조사를 제안한다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AP통신 유엔 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30개 또는 50개의 핵탄두를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마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국제사회가 인식해야 한다고 공언하는 국제정세가 되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비참한 상황에 처할 남과 북이 적대를 강화하고 있다. 어느 쪽이 먼저 타격을 받든지, 결국은 남북의 사람들이 함께 죽을 뿐이다.

남북 적대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미국이 주도한 제재는 진정한 대화가 없는 제재였다. 적대였다. 그래서 실패했다. 2019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 북·미 회담 타결을 거부한 사건이 그 증거다. 그사이 북한의 핵 능력은 현저히 향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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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탈분단, 통일 그리고 평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뜬금없이 제기한 ‘통일 포기’ 평화론이 여야를 포함한 정치권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의 ‘두 개의 국가론’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동의하기 어렵지만 별다른 고민 없는 통일론에 일침을 가한 것은 인정할 만하다. 여권에서는 진부한 색깔론을 제기하고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헌법에 없는 내용을 가지고 개헌을 시도하는 것은 모두 ‘반헌법적’인가?

몇 가지 다시 짚어봐야 할 게 있다. 왜 통일해야 할까? 그동안의 모범 답안은 ‘한민족 한핏줄론’과 국력 확대였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같은 민족이라서 합쳐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는 설득력이 약하다. 무엇보다도 ‘한핏줄’론은 일단 과학적 근거가 없다. 한반도에 사는 주민들은 여러 종족, 부족의 후예이며 모두 ‘혼혈’이다. ‘순혈’은 존재하지 않으니 ‘혼혈’을 얘기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 여진, 거란, 말갈, 중국, 대만 심지어 일본이나 아라비아의 피도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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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병실 냄새와 고기 냄새

“병실 안 냄새가 너무 힘들어. 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 암 수술 후 요양병원에서 투병 중인 엄마로부터 퇴원 희망 의사를 처음 건너 들었을 때 당황스럽고 기가 막혔다. 대장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마치고, 먹지도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병원을 나가 혼자 살겠다는 건지. 그것도 한낱 냄새 때문에.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 속 단호한 퇴원 의사를 들었을 때 지금 한가로운 냄새 타령을 할 때인지 속으로 화를 냈다. 당신 퇴원은 누가 도울 것이며. 어떻게 그깟 냄새 때문에 온 가족을 힘들게 할 수 있냐고. 가족 그 누구도 삶을 다 바쳐 암환자 곁을 지킬 수만은 없는데, 각자 벌어 먹고살기 바쁜 처지에, 대체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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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기후위기시대, 인공지능의 빛과 그림자

한 편의 영화 같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갔다. 거리 풍경은 여전히 가을이라기에 어색하지만 그래도 시간은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했던 이상기후를 경험하면서 기후가 변했다는 것에 반기를 드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는 것 같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첫인사는 기후가 변했다는 얘기다. 지난주 한·일 기후변화 워크숍 참석차 일본 도쿄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한국과 일본의 과학자는 누가 더 뜨거운 여름을 경험했는지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는 우스꽝스러운 촌극도 빚어졌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지금 전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뜨거운 키워드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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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소개팅? 그대들이 아닌, 청년이 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나는 초중고와 대학교를 거치며 단 한 번도 여자친구를 사귀어보지 못한 ‘모태솔로’다. 대학 입학 전, 누구나 한 번쯤 로망으로 느끼는 캠퍼스 커플을 꿈꾸었고 여친이 생길 기회가 있기를 바랐다. 그러던 중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미팅 지원 제도를 알게 됐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고 실망감과 함께 과연 이런 정책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종종 지역청년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기성세대 시각에서 마련된다. 지난해 서울시가 추진한 ‘청년 만남, 서울팅’이 거센 비판에 백지화됐는데도,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앞다퉈 저출생 대책이라며 ‘미혼 남녀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청년세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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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이토록 분리된 세계

두 달간 두 개의 세계를 살았다. 정치부 일과 창간기획 ‘쓰레기 오비추어리’ 시리즈 준비를 병행했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지구 전역을 돌며 탄소발자국을 남기는 물건들의 생애를 다루는데, 기획기사와 전시회를 함께 준비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갈등을 짚다가 헌 옷 수출선 항로를 확인하고, 한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회동 결과를 기다리며 전시작을 만드는 일상이었다.

당초 기대와 달리 두 업무 사이에는 어떤 접점도 없었다. 완벽하게 분리된 두 개의 세계 같았다. 두 달간 기후위기 등 환경이슈가 핵심 정치의제로 다뤄진 날을 떠올리기 어렵다. 폭염 이유를 설명할 때 살짝, 한국이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를 나열할 때 살짝 언급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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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한강 노벨상이 알려주는 인문학 가치

1990년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필자가 신문사에 취직해 취재기자로 막 뛰기 시작할 무렵이다. 부산의 모 환경단체에 몸 담고 있던 사회학 박사 출신 활동가가 서로 친분이 좀 쌓이자 대뜸 물었다. “도대체 영문학은 뭘 배우는 학문입니까.” 타 전공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없지 않았으나 문학, 그 중에서도 남의 나라 문학을 공부하는 게 무슨 실용적인 효용이 있는가 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제제기였다. 그때 나는 “그렇다면 사회학은 소용이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문송(문과라서 죄송) 세대’의 부질없는 논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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